이차장, 욕심버려
김대리, 패기살려
직급별 이직 공략법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이직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대리급부터 부장급까지의 실무진이다. 임원이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면 이들 실무진은 현장에서 직접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임원 못지않게 실무진 역시 중요하다는 소리다.
실무진은 임원보다 젊다. 젊은 만큼 패기와 자신감이 있다. 이직을 고려할 정도라면 업무 처리에 대한 사내 평판도 좋을 터다. 좋은 조건과 환경을 원하는 이직 욕구가 실무진에게 팽배한 이유다. 이직도 전략이다. 이직을 원하는 실무진이라면 자신의 직급에 맞는 이직 공략법을 머리에 담고 있어야만 한다. 실무진 이직의 특징과 직급별 팁을 알아본다.
◆인간관계 좋으면 유리=헤드헌팅사 의뢰를 통해 진행되는 실무진 이직은 임원 이직과 과정이 거의 흡사하다. 인재영입을 원하는 기업이 의뢰를 하면 헤드헌팅사에서 대략적인 후보군을 추린 뒤 리스트를 넘겨 준다. 이후 서류심사, 인터뷰 등을 거쳐 합격자를 고르는 식이다. 의뢰부터 최종 인터뷰까지 걸리는 기간은 보통 1~2개월 가량이다. 다만 한 번에 원하는 인재를 얻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2~3번 반복해 선정된다.
실무진 평가 때도 평판조회는 따른다. 실무진은 직장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만큼 임원에 비해 조회내용은 많지 않다. 주된 평가 요인은 상사와 갈등이 있었는지 등 인간관계다. 도덕성을 위주로 알아보는 임원 조회와 다른 점이다. 이은아 커리어케어 과장은 "실무진이 특별한 물의를 일으킬 만한 업무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상사, 동기 등과 함께 어떻게 관계 설정을 해왔는지 등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옷차림처럼 개인의 성향을 나타내는 부분도 조회 대상이다. 예컨대 의뢰 업체의 문화가 보수적인데 후보자는 튀는 옷차림을 좋아한다면 이직이 성사되긴 어렵다.
의뢰 건수는 과.차장급-대리급-부장급 순으로 많다. 이 과장은 "보통 실무진 영입은 신규사업을 추진하거나 기존 사업을 보강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해진다"며 "과장부터는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인정받는 단계기 때문에 외부인재 영입이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요즘 실무진 영입은 공채로 뽑기보다는 헤드헌팅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귀띔이다. 이는 기존 직원들이 느낄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제3자가 참여했다는 점을 강조해 최대한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했다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실무진이 가장 원하는 기업 유형은 외국계다. 흔히 외국계 기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좋은 처우와 자율적인 의사결정, 합리적인 조직문화 등-를 염두에 둔 희망사항이다. 업무를 하며 외국어도 익힐 수 있다는 점도 매력 요인이다.
◆대리급, 도전하자!=국내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A 대리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희망했다. 학벌 등 기본 스펙이 양호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는 적극적이었다. 다소 부족하다 싶은 영어실력으로도 꾸준히 외국계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A 대리는 세 번째 도전 만에 그의 패기를 좋게 본 회사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A 대리의 동료인 B 대리도 외국계를 희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겁냈다. 좋은 조건의 인터뷰 기회를 제시해도 아직은 영어에 자신이 없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5년이 지난 지금 B 대리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며 외국계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A는 운이 좋아 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원하는 기업으로 옮겨가고 싶다면 도전적이어야 한다. 이는 대리급만 가능한 얘기다. 과장으로 올라가기 전 단계인 대리는 자신이 맡은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직급이다. 회사에서도 현재 보여지는 능력만이 아닌, 미래에 보여줄 잠재력으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스펙과 어학능력이 다소 부족한 A가 자신의 희망대로 외국계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도 도전하는 자세를 통해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이현승 커리어케어 수석컨설턴트는 "대리급은 실무진으로서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직급"이라며 "목표를 정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차장급, 욕심을 버리자=국내 대기업 소속인 C과장은 제한된 업무 영역이 불만이었다. 그는 외국계 기업에서 좀 더 다양한 업무를 다뤄보고 싶었다. 이직은 쉽지 않았다. C는 외국계, 현재 수준의 연봉, 복리후생 등 다양한 조건을 내걸었다. 조건을 만족하는 기업은 드물었고, 간혹 있는 기업은 C를 거절했다. C 자신의 조건이 변변치 않았던 것. 결국 C는 외국계가 아니어도 좋다며 한 발 물러섰고, 그를 원하던 국내 유망기업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반면 또 다른 대기업에서 일하던 D과장은 여전히 옮겨가지 못한 경우다. 전문 면허를 갖고 있는 그는 "면허도 지녔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을 과신했다. 애초 제시한 조건에서 한 가지도 버리지 않았고, 추가 자기 계발 또한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옮겨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차장급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욕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취약한 부분이 있다. 일부는 어학능력이, 일부는 학벌이, 일부는 경력이 부족하다. 이런 점들을 재빨리 인식하지 않은 채 미적거린다면 좋은 기회도 놓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수석컨설턴트는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운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부장급, 임원을 바라보자=굴지의 외국계 기업에서 잘 나가던 E부장은 국내 대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한 경우다. 그는 다니던 회사가 합병되며 자연스레 이직을 고려하게 됐다. 한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고 살펴보니 임원진에 자신의 학교 선후배가 포진해 있었다.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돼줄 것이란 믿음에 그는 옮겨갔고 결국 임원 승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 온 그가 다소 실수를 저질러도 선후배 임원진이 "적응 단계일 뿐"이라며 옹호해 줬던 것.
부장은 별(임원)이 되기 전 단계다. 이직을 고민할 때 최우선 요인은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가' 여부가 돼야 한다. 중요한 건 임원 승진이 단지 업무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조직 문화에 맞아야 하고 기존 임원진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이런 요인들을 외면한 채 연봉 등 눈에 보이는 이득만 보고 이직을 결심하면 후회하는 경우가 잦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중장기적으로 임원이 되기 어렵거나 설사 되더라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면 이직을 관두는 편이 낫다. 국내 대기업의 F차장은 다른 대기업의 임원으로 파격 발탁된 경우다. 연봉만 거의 2배 가까이 올려 받고 옮겨간 그였다. 그러나 2년도 안 돼 쫓겨나다시피 나와야만 했다. 기존 임원진과 불화가 발생하는 등 교감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컨설턴트는 "부장에게는 임원 승진을 모색하는 과정도 업무의 일환"이라며 "본인의 가치관과 기업의 문화가 맞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