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역대 CEO의 경영철학
박태준-유상부-이구택-정준양식 ‘인재·기술 경영’ 글로벌기업 도약 결실
1970년 4월, 포항. 인구 6만7000명이 전부였던 이곳에 제철소 건설이 시작됐다. 턱없이 부족했던 자 금과 기술력의 한계에 부딪히기를 수차례. “이게 되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태준 명예회장( 당시 사장)에게 물었다.
박 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박 사장은 박 전 대통령에 게 독대를 요청했다. “설비 조달에 관한 재량권을 인정해 주십시오.” 제철소 건설의 전권을 달라고 했다.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박 전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고, 5개의 요구사항이 적힌 서류 상단에 친필로 사인을 했다.
이름하여 ‘종이마패’. 단순한 서류 한 장이었지만 힘은 대단했다. 정치권의 각종 압력을 뿌리칠 수 있었고, 직원들이 지칠 때면 사기를 끌어올렸다. 공사가 시작 된 지 3 년 2개월 뒤인 1973년 6월, 국내 최초로 고로가 만들어졌고 쇳물이 쏟아졌다.
포스코는 이후 4번의 확장 사업과 광양제철소 준공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010년엔 세계 1위 철강업체로 자리매김 했다. 42년 만에 이룬 쾌거다.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의 ‘2010년 철강사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서 생산 규모, 기술력, 수익성, 원가 절감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단기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포스코. 기술의 한계에 부딪혔던 곳이 맞나 싶다. 금융 위기를 겪은 2009년도를 제외하곤 매년 20%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거뒀고, 지난해엔 60조5000억 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기술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다.
이 회사의 성장 방식은 뭘까. 정부의 물량 공세? 밀어부치기식 업무 처리? 둘 다 아니다. 철저한 사람 관리가 이유였다. 철강기업에서 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라니. 정준양 회장은 “사람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회사가 성장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어떤 일이든 사람 손을 거치고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또 사람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축적시킨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회사의 비전 따로, 구성원의 비전 따로가 아닌 조화로운 동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 2011년 신년사에서도 정 회장은 사람 중심의 기업을 화두로 내세웠다. 포스코의 사람 중심 경영전략은 기술력 향상에 맞춰져 있다.
포스코 설립 당시인 1970년 3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쿵쾅, 쿵쾅’ 제철소 터파기가 시작될 무렵.
“직원 숙소와 병원을 먼저 만들어라.” 박태준 명예회장이 지시를 내렸다. 직원의 편의가 무엇보다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 방식에도 요령이 있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박 명예회장의 선택이다. 철강산업에 있어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기술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니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했다.
박 명예회장의 뜻은 유상부 전 회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직원이 조금 더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늘 고민했다고 한다. 제철업을 하다보면 위험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철을 다루기 위해선 뜨거운 불과 중장비 기계가 늘 있어야 한다. 24시간 내내 가동되고 있는 만큼 순간의 실수도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직원이 쉴 수 있는 편의 공간을 확대에 힘썼고, 자동화 설비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
자동화가 좋다는 것은 누가 모르랴. 문제는 기술력이었다. 직원의 안전을 강조하다보니 자연스레 각종 업무를 제어하는 시스템 개발의 기반이 갖춰졌다.
박 명예회장과 유 회장이 기술 개발의 터를 닦았다면, 이구택 전 회장은 기술력 개발과 축적을 이뤘다. 해외 철강사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축적된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한 일환에서다.
“경쟁에서 불리한 환경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포스코만의 기술이다.기술 개발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 전 회장은 포스코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을 강조했다. 직원들은 철강 기술 발전에 매진했고, 다양한 결실을 맺었다. 철강 기술 발전은 물론 건설, IT, 에너지 기술력이 쌓였다. 고로 건설, 제어 기술 확대, 탄소 배출 최소화 노력 등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 개발이 이뤄진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정준양 회장은 이점에 주목한 듯하다. 아무리 많은 기술이 있어도 활용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정준양 회장은 “매출액 200조 원 달성을 위해선 비전 2020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전 2020은 철강과 비철강, 전통과 미래산업, 제조와 서비스 산업이 균형을 이루는 미래형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다. 철강산업에 매진하며 쌓은 제어·건설·IT·에너지 기술을 산업으로 확대시켜 신성장동력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른바 포스코노믹스의 시작이다. 포스코노믹스는 포스코와 경제의 합성어로 축적된 기술을 축으로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사업 분야를 다양화 하는 것을 목표한다. 철강기업이라는 한계를 갖고선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주목, 기술의 조화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했다. 자원 개발 등 본업에 충실한 것은 기본이다.
포스코노믹스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소리 없이 산업과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철이 활용된 것이 아니어서 쉽게 알 수 없을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의 슬라이딩 도어, 전자 개찰구엔 포스코가 있다.
아파트, 지역난방사업, 심지어 전기에도 포스코가 있다. 신도시 개발의 계획부터 완공까지 범위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겠다는 포스코의 창업정신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코노믹 리뷰 김세형 기자 fax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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