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그토록 바랐던 군 전역. 이내 가수의 꿈은 가속 폐달을 밟았다. 길은 순탄했다. 가수 함중아의 도움 덕이었다. 앞장서 많은 음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최영철은 새 인연들과 함께 실력을 갈고 닦았다. 주 무대는 부산 연습실. 미국 록음악과 국내 가요를 주로 소화했다.
손발은 날이 갈수록 척척 맞았다. 무대에 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가장 주목받은 건 최영철의 목소리. 군 복무 시절 문선대서의 연습으로 다양한 장르 소화가 가능했다. 탁월한 기교 발휘는 덤. 탄력을 받은 연주인들은 바로 밴드 결성을 제안했다. 그룹 이름은 맥킨스. 최영철은 학창 시절 꿈의 실현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그는 가명을 썼다. 최영철이 아닌 최택으로 불렸다. 유명세를 타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는 소기 성과로 이어졌다. 활동하던 동두천시 일대서 알아주는 스타로 떠올랐다. 전국구는 아니었지만 최영철은 만족했다. 나이트클럽 무대서의 공연이 늘 즐거웠다. 주 무대를 이천시로 옮겼을 때도 그랬다. 자신의 노래가 낯선 땅에 울려 퍼지는 데 흥분을 느꼈다.
재미는 하나 더 있었다. 멤버들과의 합숙 생활이다. 공연 뒤 매번 라면 20개를 해치웠다. 허기가 채워지면 어김없이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걸친 옷을 모두 벗고 수영을 즐겼다. 오전 4시의 고요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새벽공기는 늘 20대 청년들의 열정과 호기로 가득 했다.
“반항아들이었다. 낮에도 그랬다. 찢어진 청바지와 타이트한 상의를 즐겨 입고 동네를 누볐다. 한 눈에 봐도 음악을 하는 지 알 수 있을 외모들이었다.”
하지만 겁 없던 시절은 길지 않았다. 풍파를 맞았다. 동네 주먹들과의 마찰이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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