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어떻게든 일을 붙들고 있는 것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일 때가 있다. 이거 마감 못한다고, 이 직업으로 먹고 사는 건 안녕이라고, 말도 안 될 정도로 원고가 안 나오는 밤을 해결해주는 건 재능도 뭣도 아닌 불면의 시간 자체인 것처럼. KBS <개그콘서트> ‘뿌레땅뿌르국’ 종영 이후 부침을 겪다 지난해부터 ‘두분토론’으로 개그 경력의 정점을 찍고 있는 박영진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다, 나쁘다가 아닌 모든 밑천이 다 떨어졌다는 기분에 “나도 이렇게 나가떨어지는구나”라고 자괴감에 빠졌던 개그맨을 끌어올린 건 다시 샘솟은 창작력이 아닌 그 자괴감으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나날이었다.
“저는 아직 좀 많이 먼 것 같아요”
스스로도 ‘소는 누가 키울 거야’라는 그 평범한 말에 사람들이 왜 웃어주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그에게 ‘두분토론’으로 얻는 인기는 “희한하고 신기한 일”이다. 남하당 박영진 대표의 캐릭터도 후배 김영희가 받아칠 것에 방점을 둔 소위 깔아주는 역할로 만든 것이었다. “저는 정곡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잘 되는 경우가 많아요. 좀 많이 먼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박영진이 따먹고 있는 ‘두분토론’의 과실이 행운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처음으로 코너 아이디어를 내고 박영진을 합류시킨 김기열과 코너를 계속해서 다듬어준 제작진의 도움을 생각하면 더더욱. “‘소는 누가 키워’라는 멘트도 만약 감독님이 별로라고 했으면 아예 시도도 안했겠죠. 유행어로 만들겠단 생각도 없었고요. 운이 좋아 무대에 올린 건데, 몇 주 있다가 감독님이 다른 멘트로 바꿔보자고 했어요. 어차피 ‘일은 누가 할 거야’라는 뜻이었으니까 ‘감자는 누가 캘 거야’라는 식으로. 그 때 작가님께서 반응이 좀 오고 있으니 그냥 가보자고 하고 감독님도 오케이 하셔서 지금 이렇게 된 거예요.” 하지만 행운이란, 때로 단순한 우연이 아닌 수많은 필연이 겹쳐지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분토론’ 이전부터 박영진의 개그 스타일은 상당히 뚜렷한 편이었다. ‘청학동에서만 청학동 예절을 배워야 하는 거면, 껌 씹으러 핀란드 가고 김밥 먹으러 지옥 가겠다’는 ‘박 대 박’ 시절이나, ‘바나나 1000개 중 600개는 아내, 398개는 아들 명의로 있어 자기 바나나는 2개밖에 없는 장관을 나라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던 ‘뿌레땅뿌르국’의 무인도 왕, ‘옥택연이나 옥동자나 둘 다 짐승 소리 듣는 건 똑같으니 똑같다’고 우기는 ‘봉숭아 학당’까지, 그는 언제나 궤변을 밀어붙여 웃음을 이끌어냈다. 인물의 프로필이 느껴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두분토론’이 거의 최초지만, 그 전에 박영진은 그런 개그 스타일 자체를 박영진 자신의 캐릭터로 누적해왔다. ‘뿌레땅뿌르국’을 다 짜놓은 김기열, 이종훈, 정태호가 ‘돌아이 캐릭터가 필요한데 너밖에 없다’며 그를 합류시킨 건 아마 그래서일 거다. “말로 짜는 건 100개도 할 수 있”는 재능의 활용. 이것은 그의 영역인 동시에 또한 그의 영역이 아니다. 분명 자신만의 개그 스타일로 웃기는 건 그지만, 그 포인트를 코너의 어떤 지점에서 터뜨릴지 판을 짠 건 동료들이었고, 때로 미처 의도하지 않은 의미까지 읽어내며 즐거워한 건 대중들이었다. “‘뿌레땅뿌르국’을 시사 풍자 개그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냥 무인도에서 먼저 자리 잡은 3명이 그걸 나라입네 하는 걸로 웃음을 주는 건데, 나라라고 하니까 당연히 군대, 경제, 세금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보는 사람들은 이게 우리나라 얘기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성공 여부는 바로 그 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재능을 넘어서는 의지, 어떻게든 웃겨야 한다
지금 ‘두분토론’으로 인기를 누리는 박영진을 그저 행운아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어디 건방지게 여자가 황도 먹으려고 술집에 와’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캐릭터는 역시 뻔뻔했던 그의 수많은 과거 개그가 누적된 본인의 캐릭터를 통해 더 부드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때문에 깔아주는 멘트라 생각했던 것은 개그로 받아들여지고, 남하당 박영진은 메인 캐릭터가 된다.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는 행운도 아니다. 그 수많은 경우의 수가 황금비율을 이룰 수 있는 건, 그만큼 이리저리 조합하고 고민하고 다른 이들의 조언을 구하는 시간이 있어서다. 웃기는 걸 업으로 삼은 이들의 정점인 KBS 공채 개그맨들조차 소재 고갈에 허덕이고 여차하면 잊히는 게 이 바닥이다. 재능의 많고 적음 여부는 이미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웃겨야하겠다는 의지로 자신의 재능을 쥐어짜고, 여러 긍정적 요소가 더해질 때 비로소 한 코너가 방송을 타고 대중을 만날 수 있다. 여전히 박영진에게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웃음은 신기한 것일 수 있지만 그런 해석의 맥락을 무대 위에서 연 건, 결국 아등바등 새 코너를 짜기 위해 노력한 자신이다. 신기한 결과란 사실, 신기할 정도로 노력한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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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eight@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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