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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 벌려고 범죄 저지른 고교 수석입학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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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막 끝난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서울 강북구 번동의 한 주택에 쳐들어갔다. 혐의자는 고등학교 3학년 김모군(18), 혐의내용은 주가조작이었다. 증권사 직원 등 작전세력과 짜고 시세조작을 벌여 수 억원을 뽑아낸 것이었다. 김군은 주가를 끌어올리고 싶은 종목에 관해 엉터리 내용이 적힌 쪽지를 증권사 메신저로 배포하는 수법을 썼다. 고등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만든 내용이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명석한 두뇌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발칙한' 고등학생을 잡으러 나선 수사관들은 주소지를 덮치는 순간 '앗'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은 10여평 남짓한 반지하 방이 김 군의 집이었다. 세간살이는 이불과 식기 따위처럼 최소한의 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집이었다. 밖에 나간 김군 대신에 수사관들을 맞은 건 몸이 성치 않은 김군의 어머니였다. 김군의 어머니는 구슬꿰기 같은 가내하청을 받아 버는 푼돈으로 김군을 키워왔다. 김군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가출해 집과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두 칸짜리 방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의 작업공간이고, 나머지 하나가 김군의 공부방이었다. 김군은 그 흔한 휴대폰조차 없었다.

이튿날 검찰에 나온 김군은 반성하며 죄를 자백했다. 학비를 벌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김군은 그동안 8000만원 가량을 모았지만 쓰지 않고 고스란히 보관해둔 상태였다. 그는 "검찰이 제 죄를 적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하지만 김군의 명민한 머리를 이용해 주가조작을 벌였던 어른들은 검찰에 소환되자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 주모자인 증권사 직원 이모씨(27)는 "김군이 저지른 일"이라며 범행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김군은 인터넷 주식카페에서 처음 만난 이씨를 무척이나 따라 인터넷 필명도 "아기 모태범"이었다. 이씨의 인터넷 필명이 "막내 모태범"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나도 너처럼 집안이 어려웠다"면서 김군의 마음을 사고는 주가조작에 끌어들인데다, 이후에 범행을 그만 두려는 김군을 막아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죄를 모두 자기에게 떠넘긴다는 소식에 김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건을 맡은 노경화 검사는 "증권사 직원 이씨는 '나는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김군의 마음을 파고들어 범죄로 이끌었다"면서 "김군은 집만 가난하지 않았다면 범행의 유혹에 절대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에게 죄를 떠넘기려 했던 이씨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명석한 김군의 두뇌였다. 김군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범죄행위를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수사진도 감탄할 정도였다. 처음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던 주가조작 종목은 하나에 불과했지만, 김군이 마음을 열고 진술을 거듭함에 따라 하나가 다섯개로, 다섯개는 스무개로 불어났다. 최종적으로 검찰이 밝혀낸 주가 조작 종목은 90여개 기업이었다. 김군의 진술 덕에 검찰은 5명을 구속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기소, 1명을 지명수배할 수 있었다.


수사를 지휘한 이천세 첨단범죄수사 제1부장검사는 이후 김군의 처리를 두고 고민했다. "재판에 넘겨 혼을 내주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현역 고교생 신분임을 감안해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수사에 들어가고, 학교에도 전혀 알리지 않는 등 검찰도 김군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부장검사는 김 군을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결단했다(기소유예). 가난한 형편과 어른들의 유혹, 학비마련이란 동기를 감안해서다. 머리가 좋은 김군의 장래도 생각했다. 대신 이 부장검사는 김군에게 "땀 흘려 노동해서 돈을 벌라"고 타일렀다. 반성문과 함께 앞으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받았다. 노 검사 역시 "넌 이미 증권계에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또 주식에 뛰어들면 다시 유혹의 손길이 뻗칠 수 있다"고 훈계했다.


김 군도 "대학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김군은 올해 모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할 예정이다. 그는 주가조작으로 벌어들인 돈도 몽땅 장학재단과 사랑의 집짓기에 기부했다. 자기처럼 "가난해서 공부 못하고,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한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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