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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오기전 톤즈로 돌아가야” 故 이태석 신부와 홍 부장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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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두산 부장, 2007년 수단 방문 생활상 촬영
고인의 마지막 함께 해, 영화 ‘울지마 톤즈’에 촬영장면 삽입


“겨울 오기전 톤즈로 돌아가야” 故 이태석 신부와 홍 부장의 인연 이태석 신부(오른쪽)와 홍진기 (주)두산 두피디아팀 부장이 수단 남부에 위치한 마을인 톤즈에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던 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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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겨울이 오기전에 톤즈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난 2008년 서울에 온 이태석 신부(2010년 1월 14일 선종)을 모시고 병원을 찾은 홍진기 (주)두산 두피디아팀 부장은 이 신부가 대장암 말기로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들은 후 어떤 말도 건낼 수 없었다.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난감해하던 이 신부는 오히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단 아이들과 후원자들에게 미안하다며 홍 부장에게 이렇게 말을 전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이 신부를 떠나 보낸 홍 부장은 그 때 그의 표정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단다.


홍 부장이 이 신부를 알게 된 것은 2003년 방영된 KBS의 ‘한민족 리포트’를 통해서였다. 이 신부는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살레시오회에 입회에 2001년 사제품을 받자마자 수단으로 파견돼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방송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2006년 여름 휴가차 서울 살레시오 수도원을 방문해 잠시 머물러 있던 이 신부를 찾아갔다. “첫 만남 이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게 됐다. 특히 야생동물을 촬영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소개를 받았다”며 “제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드리려고 하자 신부님은 ‘직접 톤즈로 와서 찍는게 어떻겠느냐’며 초대를 했다”고 말했다.


별 생각 없이 “가겠다”고 답했는데, 1년 뒤인 2007년 홍 부장은 정말로 톤즈로 가게 됐다.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 중이던 수단에 들어서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를 통해 북부수단 카르툼에 들어간 뒤 가톨릭 선교사 신분으로 위장해 경비행기를 4시간이나 타고 날아간 끝에 남부 와우로 날아갔다. 공항에는 이 신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고, “여기가 어디라고 이곳까지 찾아왔느냐”며 반갑게 홍 부장을 안아줬다.


“겨울 오기전 톤즈로 돌아가야” 故 이태석 신부와 홍 부장의 인연 생전인 이태석 신부(가운데)와 홍진기 (주)두산 두피디아팀 부장(왼쪽)이 수단 남부에 위치한 마을인 톤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신부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톤즈는 말 그대로 불모지 였다. 40도가 넘는 고열 속에 우기만 되면 습지로, 건기에는 땅이 갈라지는 그곳에서 이 신부는 새벽에는 가톨릭 사제, 아침이면 의사와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 점심때는 학교를 짓는 벽돌공, 저녁이면 브라스밴드 지휘자와 음악선생님, 밤이 되면 다시 응급실 의사가 돼 병원으로 불려가는 일상을 8년 여간 버텼다.


선교사로서 의사로서의 봉사활동도 어려운데 선생님 역할까지 자임한 이유는 “교육만이 수단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이 신부의 소신 때문이었단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만 이 아이들이 커서 아프리카가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이 신부는 학교를 짓는 일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현지 상황이 워낙 열악했던 탓에 자재를 공급받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 아이들과 직접 벽돌을 만들고, 망고나무 서까래를 올려 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홍 부장이 촬영을 위해 온지 일주일이 지나서는 쌀이 떨어져 먹을 것이라고는 뒤뜰의 토마토가 전부였다. 홍 부장이 보기에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 신부 자신이었다.


2008년 왕복표를 끊어 서울로 왔다가 병명을 알게 된 이 신부는 고통스러운 항암제 투여를 견뎌내며 다시 톤즈로 돌아갈 희망을 놓지 않았단다. 그 해 자랑스러운 의사로 선정되자 이 신부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병세는 악화됐다.


“겨울 오기전 톤즈로 돌아가야” 故 이태석 신부와 홍 부장의 인연 고 이태석 신부


영면 하루 전 홍 부장이 병실을 찾아갔을 때 침대에 잠시 앉아 있던 이 신부는 “서울의 야경을 보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이 신부의 감동적인 삶을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 엔딩 크레딧에는 ‘촬영 두산 홍진기’라는 이름이 들어있다. 이 신부와의 인연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한 홍 부장이 수단 현지에서 촬영한 장면을 기꺼이 영화 제작을 위해 내놓았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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