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한국 이름 이충성(李忠成), 일본 이름 리 다다나리(リタダナリ). "내 조국은 한국과 일본"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국이 외면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다.
지난 30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일본과 호주의 2011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양 팀이 득점 없이 맞서던 연장 후반 4분. 그림같은 왼발 발리슛으로 호주쪽 골망을 가르며 일본에 우승컵을 안긴 주인공이 그다. 경기중 TV중계화면에 잡힌 그의 백넘버 19번 위에는 한국인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LEE'라는 영문 명칭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이 멋진 골로 그는 일본 열도의 영웅이 됐다. 재일동포 4세인 이충성은 일본에서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며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서기 위해 한국과 일본 중 한 나라를 택해야 했다.
조총련계인 조선 초등학교에서 축구선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가 처음에 택한 나라는 한국. 도쿄FC 유소년팀에서 실력을 쌓기 시작한 이충성은 2004년 J리그 1군에 합류했고 범상치 않은 실력은 한국 축구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박성화 당시 한국 청소년 대표팀 감독은 소집 훈련에 이충성을 불렀고 이충성도 부름에 화답해 한국 캠프에 합류했다.
태극마크에 바짝 다가선 그의 발목을 잡은 건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라는 신분이었다. 일주일 조금 넘게 파주NFC에서 훈련했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국 대표팀에 녹아들지 못했고 불안정한 신분만 재확인하며 겉돌았다. '이방인'이었던 이충성은 이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당시 동료들에게 소외받은 얘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더 이상 한국 대표팀의 부름을 못 받은 이충성을 불러들인 건 일본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던 소리마치 당시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이 2007년 이충성을 부른 것. 일본은 그에게 '국가대표'를 약속하며 귀화를 제안했고 '축구선수'로 국제무대에 서고 싶었던 그는 결국 일본을 택했다.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올림픽에까지 나간 그를 두고 한국에선 '이충성이 조국을 버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충성의 대표팀 유니폼 뒷면에는 'LEE'라는 글자가 선명했고 J리그에 등록한 이름도 'LEE CHUNSON'이다. 그는 아시안컵 결승전이 끝나고 "한국사람, 일본사람이 아니고 축구선수로 이 자리에 있다"고 말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