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은지 기자]이준익 감독의 신작 '평양성'에서 개성 강하고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들이 넘쳐난다. 그 사이에는 영화계에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존재했다. 바로 연개소문의 막내아들 남산 역을 맡은 강하늘이다.
이준익 감독은 1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와 마찬가지로 '평양성'에서도 신인을 기용했다. 이 때문에 강하늘에게는 '제2의 이준기 되나'라는 시선이 따라다녔다. 지금은 잘나가는 배우 중 한명인 이준기지만 '왕의 남자'에 출연했을 때만 하더라도 영화 한 두 편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신인에 불과했다. 강하늘과 이준기의 공통점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가능성 있는 신인'이라는 것이다.
◆ '평양성' 오디션, 100%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양성' 개봉을 앞두고 만난 강하늘은 눈 속에서 피어난 새싹과 같았다. 신인에게서 볼 수 없는 당찬 모습이 있었으며 들떠 있었다. 자신의 소신을 정확하게 말했고 "건방져 보일 수 있겠지만..."이라는 말로 자신을 낮춰 말하는 법을 알았다. 뮤지컬계에서는 이름난 강하늘이지만 영화계에서는 그저 그런 신인에 불과한 그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는 100% 떨어진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냥 어영부영 말도 제대로 못하고 떨어지느니 할 말은 다 하고 떨어지자는 생각으로 갔죠. 감독님께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자리일 수도 있으니 한번만 참고 들어 주세요'라고 말한 뒤 제가 생각하는 남산의 성격을 말씀드렸어요. 남산은 연개소문의 아들이고 괴팍한 형들과 살아갔기 때문에 그리 유약한 이미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제 이야기를 듣더니 감독님께서 '우리가 찾던 남산은 여리고 어느 쪽으로 휠지 모르는 유약한 인물이다'고 말씀하셔서 '정말 떨어졌구나' 생각했어요."
강하늘은 이준익 감독을 존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디션을 보는 동안은 감독과 신인배우가 아닌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오디션'이 아닌 '대화'를 나눈 결과 그는 남산 역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정말 건방져 보일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감독님께서 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드려 주셨어요. 할 말을 다 하고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데 정말 홀가분하더라고요. 혼자 지하상가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합격 전화를 받았어요.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기쁨보다는 부담감이었죠. '내가 이 영화를 해도 되나?' '감독님과 다른 선배들에 해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수많은 생각이 들었고 '영화에 득은 되지 않더라도 해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각오로 임했어요."
◆ 첫 영화 '평양성' 제 연기에 대한 점수는요...
그는 이준익 감독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당차게 말했지만 자기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냉정했다. 처음으로 영화를 보는 자리에서도 "내가 연기 하는 부분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다면 강하늘이 준 연기 점수는 몇 점일까. "겸손하게 말해서가 아니라..."고 했지만 무척이나 겸손한 점수를 던졌다.
"제가 영화에서 열 신정도 출연했다면 아홉 신은 눈을 가리고 봤어요. 어떻게 제가 출연했고 연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일부러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옆 사람까지 집중을 못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제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1점정도요. 그 1점도 연기에 주는 점수가 아니라 전주까지 가서 촬영을 한 제 몸에게 주는 상이에요. 뮤지컬을 할 때도 그랬어요. '왜 연기를 이렇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평양성' 출연 배우들을 보면 신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보였다. 정진영을 비롯해 류승룡 이문식 윤제문까지 연기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배우들이 출연했다. 그 사이에서 강하늘은 기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 자신의 연기에 고작 1점을 던졌지만 기라성 같은 배우들 사이에서라 더욱 자신의 연기가 초라해 보였을 수도 있다.
"처음 촬영장을 갔는데 너무 주눅이 들었어요. 선배들에게 기죽지 않도록 더 연습했고 정말 열심히 했죠. 형으로 호흡을 맞춘 류승룡 윤제문 선배는 평소에도 정말 존경했던 분들이거든요. 그런 생각이 점점 더 절 기죽게 만들더라고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지금 영화에서는 동등한 형, 동생 사이야'라고 최면을 걸었어요. 티를 안낸다고 했는데 그래도 기죽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웃음)"
◆ '스타'가 아닌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강하늘은 '평양성'으로 영화팬들 앞에서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대부분의 신인 연기자들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라는 질문을 던지면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질문에 "그냥 '배우'가 되고 싶다"는 도돌이표 같은 답이었다. 이쯤 되니 강하늘이 생각하는 '진짜 배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가 생각하는 배우라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에요. 한마디로 말하면 '존재'하는 거죠. 조금은 4차원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불가능이 없는 '존재들'이에요. 배우는 모든 것이 준비 돼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라는 뜻이에요. 전 아직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의 큰 꿈은 '안녕하세요. 배우 강하늘입니다'라고 절 소개하는 거예요. 평생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무슨 일이든 첫단추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강하늘은 '평양성'으로 첫 단추를 잘 꿴 배우 중 하나다. 이를 바탕으로 좋은 필모그래피를 만들고 싶은 건 모든 배우들의 바람일 것이다. 강하늘 역시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소망을 전했다.
"운 좋게 좋은 작품을 시작했으니까 필모그래피를 잘 채우고 싶어요. 인지도를 쌓기 위해 아무작품이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처음부터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평양성' 역시 평생 기억에 남는, 필름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작품인데 가볍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포츠투데이 이은지 기자 ghdpssk@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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