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느리게 시작됐다. 주말에 도착한 2011년은 휴일을 건너면서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나쁠 것은 없다. 연휴도 없어진 터에 이런 저런 생각과 다짐을 하면서 여유롭게 신년을 맞은 것은 고마운 일이다.
오늘로 2011년 3일 째. 하지만 일터는 새해 첫 출근, 첫 날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시장은 다시 소란해졌고 회사마다 하례식 또는 시무식으로 떠들썩하다. 늘 함께하는 동료들이지만 오늘 힘주어 맞잡은 손이 한결 따스하다. 건강과 행운을 비는 덕담이 오가고, 약속과 다짐이 어우러져 빛을 낸다.
해가 바뀌었지만 세월과 연식의 매듭이 선명한 것은 아니다.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매서운 추위, 푹설주의보, 구제역 확산 소식...출근 길의 분망함도 작년이었던 지난 주와 다를 것이 없다.
사무실 풍경 역시 작년 그대로다. 손 때 묻은 컴퓨터, 몇 권의 책, 뒤섞인 서류뭉치. 아, 달라진 게 딱 하나 있다. 탁상용 달력이 바뀌었다. 묵은 2010년 달력을 밀어내고 2011년 판이 자리를 차지했다. 작은 카렌더 하나가 사무실의 연식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징표다.
새 달력 첫 장을 보면서 혼자 물어본다. 2011년은 어떤 해가 될 것인가. 정치적으로는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될 것이다. 큰 선거는 없지만 2012년 대선과 총선을 겨냥한 치열한 물밑 싸움이 벌어질게 뻔하다.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예측불허다. 사회 곳 곳은 갈등의 불씨로 위태 위태하다. 위기를 넘긴 경제가 위안이라지만 성장이나 물가, 일자리 모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라 밖 사정도 불안 불안하다. 2011년 한 해 운세가 결코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신묘년 또끼 해 '2011'년, 관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21세기 두번째 10년의 출발점을 상징하는 '1'자 둘이 나란히 서 있다. 2011년을 줄여 한 해동안 쓰게 될 '11. 축구마니아들은 베스트 일레븐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열정의 기호만으로 다가서지는 않는다.
11의 형상은 '공존'과 '대립'이다. 마주 선 연인처럼 11의 모습은 아름다운 동반자, 공존으로 다가온다. 공존은 마주 보고 서는 것이다. 함께 가는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너와 나의 다름이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축복이다.
11의 또 다른 모습은 영원한 평행선, 곧 대립이자 갈등이다. 편 가르기다. 따로 가는 길이다. 타협과 양보는 곧 패배다. 같은 숫자의 모양새에서 어떻게 이런 상반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일까. 2011년이 가진 숙명인가.
이명박 정부가 외쳐온 '동반'과 '공정'의 화두는 새해에도 이어질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빈자, 힘있는 자와 약한 자, 남과 여, 서울과 지방, 여와 야 - 이들에게서 동반과 공정의 룰은 지켜지고 있는가. 적어도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는가. 글쎄다.
대립의 평행선은 오히려 짙어졌다. 갈등과 반목이 생태적 본능인 듯한 정치권. 4대강 물줄기에 구비 구비 어려있는 갈등의 상처. 접점없는 남북 대치. 글로벌 경제가 고비를 넘긴 후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는 나라들.
2011년의 관상은 그것 뿐일까. 문득 '11'에서 또다른 실체적 형상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의 젓가락이다. 혼자서는 그저 나무 한 토막, 프라스틱 한 가닥에 불과하지만 둘이 한 점에서 만날 때 살아나는 젓가락의 생명력. 반도체, 생명공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대한민국 젓가락의 마술.
이인동심 점점형통(二人同心 漸漸亨通) - 둘이 하나되니 무엇이든 이루리라. 2011년은 만남으로서 기적을 이루는 젓가락의 마술이 한반도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박명훈 주필 pmho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