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1년만에 직군제 폐지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직군제 폐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99년 전문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직군제는 11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김 총재는 31일 신년사를 통해 조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우선 직군제를 폐지, 직원들의 사고와 행동의 폭을 더 넓히는 것이 개혁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군제는 한은 업무를 5개 직군으로 나누고 직군 내에서 전문성을 갖추도록 한 제도로, 사실상 직군간 이동이 불가능해 조직 폐쇄성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김 총재는 개혁의 방법론과 관련, "한은과 같이 업무관행이 정착된 조직에서는 단기적이며 충격적인 변화보다는 순차적이며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며 변화 폭이 급격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어 "하드웨어적 측면보다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개혁에 주안점을 둬야 진정한 조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구성원들 사고의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제반 조치들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총재는 "개혁의 이니셔티브가 조직원으로부터 나와야 개혁이 성공한다는 원칙이 실현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다양한 제도를 각 부서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자주성과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조직이 더 활력적이고 경쟁적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직원들에게는 조직의 존재 이유와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총재는 "대외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전제조건 아래 각 부문의 균형이 유지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중앙은행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업무를 개발하는 데 모든 구성원들의 헌신적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며 "시대상황의 변화에 적합한 각 조직의 존재이유(raison d'etre)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처해야만 각 부서의 경쟁력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이어 "인력구조를 고려할 때 모든 분들이 다 본인들이 원하는 적소에 배치되기는 어렵다"며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한국은행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여러 직책을 직급에 상관없이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급에 상관 없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을 조직원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번에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은행이 나의 꿈'이라는 표현을 했던 것은 이런 대외적 환경에서 우리 한은의 기여가 중차대해야 하기에 우리 함께 노력하자는 의지의 표시였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지난 15일 열렸던 한은 기자 송년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은행이 나의 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는 케인즈의 말을 인용하며 "익숙한 생활에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발전의 기회가 많지 않고,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불편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leez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