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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이야기] ‘처녀항해’는 정말 첫 항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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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해상 시운전 통해 건조후 선박 상태 종합 점검
플랜트는 수개월 가량 점검하기도


[배 이야기] ‘처녀항해’는 정말 첫 항해일까?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대 크기인 1만3800TEU급 컨테이너선이 해상 시운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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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건조된 배가 명명식(命名式)을 거쳐 조선소에서 선주에게 인도된 후 첫 화물을 싣고 출항하는 것을 ‘처녀항해(Maiden voyage)’라 한다.
그런데, 처녀항해는 정말 ‘처녀(處女)’ 항해일까? 정확한 대답은 의전상 처음으로 칠 뿐 실질적으론 아니다.


선주에게 선박을 인도하기 전에 조선소에서는 건조한 배의 성능을 측정하는 ‘시운전(Sea Trial)을 실시한다. 명명식이 화려한 축제로 치뤄지는 중요한 이벤트인 것은 확실하지만 시운전도 배가 탄생하는 일생일대의 이벤트중 하나다.

한 척에 1000억~1조원에 달하는 값비싼 선박을 선주가 대충 보고 넘겨 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설계상으로 제시된 모든 기계장치의 성능,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테스트해 하자가 있으면 보완해 완벽한 선박을 인수하겠다는 것으로 조선사의 건조능력을 증명하는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소는 선박의 시운전을 실시할 때에도 건조 과정 이상의 긴장감을 갖고 임하며, 담당 직원들도 최고의 정예요원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시운전 할 바다 공간 없어 애로 겪기도= 시운전은 육상과 해상 두 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육상 시운전에서는 메인 엔진의 성능 및 출력 확인, 발전기 등 각종 보조기계의 작동 상태 점검, 선내 전기 공급 장치 및 자동화 시스템과 통신장비의 성능, 선박의 조정 및 타력 능력 등을 점검한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혈관의 피는 잘 도는지, 손발은 잘 움직이는지, 각종 장기들은 정상적으로 잘 기능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육상 시운전 결과 이상이 없으면 해상 시운전을 실시한다. 해상 시운전은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조선소 밖 실제 바다 위에서 행해진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해상 시운전은 통상 울산 앞바다에서 50~60km 떨어진 울산-포항 사이의 해역에서 실시되는데, 날씨에 따라서 부산, 거제도, 제주도 해역에서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해상 시운전을 할 수 있는 장소를 구하는 데에도 애로가 많았다고 한다. 지난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정부 시절에는 지나친 규제로 우리 바다에서조차 시운전을 맘대로 못 할 때가 있었다는 것.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자 IMF 외환위기로 고통 받는 기업에 각종 규제를 해제하면서 항해구역 허가제도 폐지됐고, 그 때서야 공해상에서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시운전 항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어둠의 자식’···90여명이 뜬 눈으로 지새= 해상 시운전이 실시되면 조선소는 선주와 선급 직원들이 함께 선박을 타고 나가게 된다.


여기에 투입되는 인원은 통상 80~90명 가량에 이르는데 설계, 운전, 품질, 연구원, 엔진분야 엔지니어와 주방요원까지 조선소 직원 60~70명, 선주 15명, 메이커 엔지니어 10명, 선급 2~3명으로 구성된다. 네덜란드 네들로이드라는 해운사의 경우 무려 150명까지 태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해상 시운전은 속력, 조종, 기관(엔진), 진동, 소음, 선회(Turning) 등 선박의 성능과 구조, 승무원의 안전과 관련된 약 40개 기본항목으로 이뤄지며, 선형에 따라 몇 가지 항목이 추가된다. 평가에 걸리는 기간은 선박은 짧게는 1박 2일에서 길게는 일주일이 걸리며, 드릴십·액화천연가스(LNG)선과 같은 특수선은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 특히 시추선과 부유식시추저장설비(FPSO) 등 해양 플랜트는 석 달 가까이 시운전이 진행되는데, 이는 플랜트 설비들이 워낙 구보가 복잡하기도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지역이 깊은 심해지대라 해상 시운전도 태평얀 등 바다 위에서 실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머리부터 발끝, 몸속 내장까지 샅샅이 점검해 완벽한 품질의 선박으로 탄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테스트는 최대 한계치(Maximum Capacity)에 도전한다. 따라서 극도의 긴장과 최고조의 흥분상태에서 거의 철야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바다 위의 전장(戰場)’이 된다.


보통 시운전을 나가면 승선 요원들은 밤을 꼬박 세우기 때문에 시운전에 승선한 사람들을 ‘어둠의 자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돌아가는 엔진룸에서 24시간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못 보고 불철주야 품질 테스트를 하는 시운전 요원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30분 남겨두고 경보음, 12시간 테스트 물거품 돼= 해상 시운전 항목 중 속력 테스트는 매우 중요하다. 예전에는 설치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놓고 선박을 이와 평행하게 운항해 속도를 측정했지만, 최근에는 지구위성항법시스템(GPS)을 이용해 측정한다. 특히 컨테이너선은 많은 수의 컨테이너를 싣고 신속하게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선박 보다 속도가 빨라야 한다. 당연히 속도 테스트는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해상 시운전에서 가장 힘들고 긴장되는 검사는 바로 선급에서 규정하는 기관구역의 무인화 시스템 검사인 ‘UMS’란다. UMS는 정상적인 항해 때와 동일한 조건으로 당직자 없이 각종 경보시스템만 가동한 채 진행하는 검사를 뜻한다.


UMS가 시작되면 짧게는 4시간, 길게는 12시간 동안 각종 기관실 장비의 작동 상태를 감시하며, 지정된 시간 동안 어떤 문제의 발생 경보도 울리지 않아야 한다. 12시간 동안의 검사 기간이 진행되는 도중 11시간 30분 동안 아무 문제없다가 완료 30분을 남겨 놓고 갑자기 울리는 경보음이 울리면, 문제를 조치한 후 다시 12시간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선주는 이러한 검사를 4번이나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12시간씩 4번, 총 48시간 동안 진행된 검사 시간 동안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보음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감으로까지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운전 요원들은 먹고 자는 것도 눈치껏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각자 담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가 문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놓칠 경우 곧바로 선주와 선급 직원들의 클레임으로 이어진다.


◆태풍 때문에 배 뒤집히기도= 기상 문제도 해상 시운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기상 예보를 철저히 분석한 후 시운전을 나서지만 여름이나 가을에는 예기치 않은 태풍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선박과 승선요원들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 위치한 SSI조선소에서 시운전을 앞두고 정박해 있던 한 선박이 90도 각도로 쓰러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기상악화로 순간 강풍이 불고 높은 파도가 일자 선체가 안벽 콘크리트 및 암반에 부딪히면서 뒤집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배는 자동차 8000대를 실을 수 있는 3만5000t급 운반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같은 선박 전복 사고시 조선사는 선박의 손상 규모를 파악한 뒤 수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면 노출된 선박 바닥 균열을 수리하고 해상 크레인을 이용해 선박의 균형을 완벽히 맞춰 바로 세운 뒤 옆면 등에 생긴 균열 등 손상부위를 복구해야 한다.


조선사의 경우 대개 건조시 선박보험을 드는 만큼 금전적으로 큰 피해는 없지만 계약시 선주사와 약속한 납기일을 맞출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조선사-선주 간 계약은 납기기한을 맞추는 것이 생명인데 이 부분에서 신뢰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 이는 개별 조선소를 넘어 해당 국가 조선업계 전반의 신뢰회복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1위 한국 조선 밑바탕= 시운전 요원들은 선사측과의 유대관계도 중요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선박이 외국 선사에서 발주하는 것이라 외국인 선주들이 많고, 그들과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어는 필수다. 그런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같은 영어라고 해도 조금씩 표현이 달라 가끔 서로 오해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이를 원만히 해결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성이 선주들이 한국 조선소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상과 해상, 이렇게 시운전을 무사히 통과한 선박은 비로소 자기 이름을 갖고 선주들에게 인도된다. 항상 긴장 속에 치러지는 시운전이지만 이를 통해 얻은 각종 정보는 다음에 건조할 선박에 활용되며, 이러한 노하우가 축적돼 한국이 세계 최고의 조선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자료: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




채명석 기자 oricm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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