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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포럼]'맞대응'과 '관용적 맞대응'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8초

[충무로포럼]'맞대응'과 '관용적 맞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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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제품의 가격을 정하는 일은 기업의 실무자들에게는 늘 도전적인 일입니다만 시장에 이미 유사한 제품이 나와 있는 상황이라면 고심은 깊어집니다. 시장 내에서 눈에 띄는 주도기업이 있을 경우엔 그 기업이 설정한 가격을 따라가는 (가격선도라고 하는) 일종의 묵시적 담합이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잠재적인 출혈경쟁까지 각오하고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추어 볼 것인지 아니면 평화롭게 작은 점유율에 만족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지요. 대형마트의 저가치킨이 시장반응을 선명하게 알려줬으니 앞으로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치킨사업자는 파격적인 가격인하를 한번쯤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기업들은 선도업체가 그동안 이룩해온 성과가 좋고 선도업체의 정보력에 대한 신뢰가 클수록 더 많이 모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방에 관련돼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어 온 것은 어떤 행동(모방)이 상대방에게 다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는 주로 게임이론가들에 의해 이뤄져 왔는데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연구들이 유명합니다. 마치 따로 감방에 갇혀 자백을 강요 받는 죄수들처럼, 둘 다 신의를 지키면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나만 혼자 신의를 지키면 배신한 상대가 이익을 누리는 상황. 마치 시장에서 가격을 낮춰 경쟁을 벌여 볼까 고민하는 기업들의 입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만약 둘 다 배신한다면 최악의 결과가 초래되지요.

액셀로드라는 학자는 1980년대 초반,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될 때 과연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많은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대응 전략을 공모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가장 단순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맞대응(tit-for-tat)'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상대가 신의를 지키면 나도 지키고,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반드시 배신하는 방법이야말로 상대의 배신을 막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지요. 배신에는 응징이 따른다는 규칙이 명확해지면 역설적으로 상호협력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액셀로드는 그래서 이런 연구가 담긴 책에 '협력의 진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떤 학자는 동ㆍ서독 관계를 언급하면서 서독이 바로 이 맞대응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서독은 동독이 평화적인 행동을 취하면 평화적으로 대응하되,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면 정확히 그에 맞서 대응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보복원칙'도 이러한 관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맞대응 전략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때로 우발적인 행위(오차)가 끼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맞대응 전략은 상대의 우발적인 행위에 같은 방법으로 반응하게 함으로써 협력을 파괴시키고, 상황을 파국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마치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1차 대전으로 이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1997년, 액셀로드는 새로운 책, '협력의 복잡성'에서 단순한 맞대응 전략을 개선한 '관용적인 맞대응(Generous tit for tat)'을 제안합니다. 이 전략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행동에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되 상대가 배신하더라도 일정한 확률로 관용을 베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가 우발적인 배신을 하더라도 상황이 파국으로 떠밀려가지 않도록 제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략을 취하더라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오래 관용적이어야 하는지는 마주보고 있는, 방금 내 뒤통수를 쳐서 쳐다보기도 싫은 상대가 얼마나 합리적인 존재인지 심사 숙고해 결정해야만 합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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