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1000억원이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승패를 갈랐다.
현대그룹은 5조5100억원 정도의 입찰가격을 써낸 반면, 현대차그룹은 5조1000억원 가량을 입찰가격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 4000억원의 차이가 발생하는 셈이다.
여기에 전체 평가에서 30%를 차지하는 비가격적인 요소에서 현대차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가격차는 1000억원 정도로 좁혀졌다. 이 부분이 현대건설의 주인을 가른 요소가 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자금동원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한 것에 대해 자금력만 믿고 방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동양종금증권과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을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이면서 1조원 가량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나티시스은행이 예상보다 큰 금액을 투자금으로 내놓으면서 5조원 이상을 입찰가격으로 써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양측은 가격을 놓고 연막작전을 펼치는 등 막판까지 치열한 심리전을 펼쳤다. 진정호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상무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상대적으로 약세임을 부각시켰다.
현대차그룹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러 온 조위건 현대엠코 사장도 같은날 인수전 참여에 앞서 "5조원을 썼냐"는 질문에 "5조원은 무슨…"이라는 말로 일축하면서 "경제적인 가격을 썼다"고 위장막을 쳤다.
현대차 M&A 관계자도 15일 "5조원은 너무 비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는 무리한 베팅으로 '승자의 저주'에 빠지느니 차라리 인수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무조건 인수하고 보자는 식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안 되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이날 공식 입장을 통해 "시장 논리에 따라 적정한 가격과 조건을 제출했고 최선을 다했으나 선정되지 못했다"면서 "채권단의 입장을 존중하며 현대건설의 견실한 발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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