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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어떠셨어요?"..설문지 돌리는 판사님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현직 항소재판부 부장판사가 손수 설문지를 만들어 재판 당사자와 대리인 등을 대상으로 재판절차 관련 요구사항을 조사해 관심을 모은다. 전문성 높은 정식조사가 아니라서 통계학적 유의도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재판 수요자'들의 단편적인 생각이나마 엿볼 수 있어 뜻 깊다는 반응이다. '항소심도 변론기일 전에 준비기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변론기일에 집중적 증거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도드라졌다.


21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민사항소7부 양현주 부장판사(49ㆍ연수원 18기)는 지난 3월18~26일까지 민사항소 재판부 법정에 나온 재판 당사자ㆍ대리인 등 210명을 대상으로 민사 항소심 재판 운영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양 부장판사는 재판기일 지정ㆍ준비기일과 변론기일ㆍ집중심리ㆍ서증 등에 관해 22개 질문을 던졌다. 답변 가운데 준비기일과 집중심리 운영 등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항소심에서 변론준비기일이 지정되길 원하는지 묻는 질문에 70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사건 관련 서류가 가능한 한 꼼꼼히 검토돼 재판이 유리하게 흐르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양 부장판사는 "이미 1심에서 사안을 어느 정도 다투고 온 뒤라서 사실 항소심에서는 준비기일이 별로 필요치 않다. 특히 현재처럼 준비기일과 변론기일이 거의 분리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일지정이 큰 의미가 없다"면서도 "사건 당사자들은 많은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연 재판부가 내가 낸 모든 서류 등을 꼼꼼하게 다 봤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경우 준비기일을 열어 재판부가 모든 관련 서류, 기록 등을 하나하나 다 챙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 당사자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변론기일에 증거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심에 대해 35명이 '그렇다'고, 19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반면 항소심에 대해서는 33명이 '그렇다', 32명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심에 비해 항소심 변론기일에선 집중심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당사자ㆍ대리인이 다소 많았다.


양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집중심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응답이 상당히 많은데 판사들은 이를 빨리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항소심에서는 이미 쟁점이 모두 정리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중심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재판 당사자는 신속히 재판을 끝낼 수 있고, 한정된 업무능력을 어떻게 배분해 과중한 업무를 감당할 것인지 고민하는 법원 입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사건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집중심리는 '효율'의 문제와도 연관된다"고 강조했다.


'법정에서의 서증조사는 재판부가 서증을 제출받는 방식으로 진행돼 그에 관한 설명이나 공방이 즉각 이뤄지지 않는데, 이 때문에 서증에 관한 재판부의 심증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없어 불만이 있는지'라는 질문에는 55명이 불만이 없다고 했고 29명이 불만이 있다고 했다. 불만이 없다는 대답이 더 많았지만, 양 부장판사는 불만이 있다는 사람도 상당수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민사 사건의 경우 판사는 법정에 들어서기 전 이미 80~90% 심증을 갖고 있다. 법정에서는 서면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10~20% 부분에 관해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그래서 서증이 중요하다"면서 "서증조사 방식을 개선해 법정에서 이를 접수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재판 당사자가 입증취지를 확인하고 설명토록 하는 등 구술심리를 중심으로 한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구속력이 없어 당장 현저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법원이 수요자들 의견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게 양 부장판사 생각이다. 그는 "각 재판부별로도 서로 어떻게 재판을 진행하는지 잘 모르는 게 사실"이라면서 "소송법을 바꾸지 않는 한 법관 각자의 양심에 따라 해야 하는 재판을 두고 '우리 이제 이런 방향으로 재판을 운영해봅시다'하는 식으로 강요할 순 없겠지만, '재판 수요자인 사건 당사자 등의 생각이 이러하니 재판을 진행할 때 염두에 두자'는 의미로 설문을 진행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양 부장판사는 지난 4월 열린 '2010년도 민사합의ㆍ항소재판장 워크숍'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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