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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DNA]여든살, 치즈·유기농사업 도전 '낙농보국' 실천

재계 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DNA서 찾는다
<16> 매일유업 김복용 회장 ② <끝>


'동반자' 낙농가 우유 공급과잉 고통 덜기
주위 반대 뚫고 치즈공장 설립 '相生경영'
첨단기술 도입 유기농 제품 대이은 투자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정부가 계획한 차관사업을 민간 주도로 완수한 본보기가 됐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앞으로 여타지역에서 낙농개발을 하는 경우 적합한 사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82년 12월, 매일유업이 주도한 제1, 2차 종합낙농사업이 10년에 걸쳐 완료되자 이같은 평가가 나왔다.

당시 22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국제연합(UN) 산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크노블 평가조사단장은 "매일유업이 한국 정부를 대신해 종합낙농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한국 전역에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낙농개발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했다. 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전(前) 회장)를 필두로 한 매일유업의 '낙농보국' 신념이 본격적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낙농업 불모지를 집념으로 일궈내다 = 70년대 사업 초창기 목장주를 설득하는 일을 비롯해 소를 들여오고 공장을 건설하는 일까지, 김 회장에게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낙농업은 일반 쌀이나 보리농사보다 훨씬 까다롭고 손이 많은 가는 작업이라 정부와 매일유업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3년에는 미국과 캐나다로부터 젖소를 들여오는 데 항공편을 이용했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도 드문 시절에 수송기를 통해 소를 실어 나르는 광경은 진풍경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유업계 최초로 시도한 일이었고 나른 대한항공 역시 처음이었다.


젖소를 들여올 때와 맞물려 같이 진행한 공장건설도 김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70년대 당시 전국적으로 낙농업이 기반이 약했던 상황에서 매일유업이 처음 공장지역으로 점찍은 호남지역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고속도로가 없었던 탓에 신선함이 생명인 유가공업이 발달하기엔 무리였던 셈.


김 회장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이같은 난관을 극복했다. 당시 국내 최초로 외국 특허기술인 테트라팩 포장기술을 도입한 것도 김 회장이었다. 1973년 준공된 광주공장의 주력상품이었던 이 테트라팩 우유는 최소 6개월 이상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된 신개념 제품으로 우유를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던 산간 도서지방까지 공급됐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이 기술을 도입한 결과 가동 7개월 만에 호남지역 우유 소비량을 두배 이상 늘렸고 공장 운영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설명했다. 비행기로 실어 나르고 외국 전문가를 불러들여 낙농가들에게 직접 교육을 펼치는 등 김 회장이 진두지휘 아래 70년대 초 2만여 두에 불과하던 호남지역 젖소 사육두수는 2000년대 이후 54만 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치즈는 내 마지막 숙원사업"..여든 노인의 약속 = 김복용 회장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세운 공장은 지난 2003년 준공된 치즈전문공장이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있는 '막내' 공장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자연치즈 자동화 설비공장으로 자연·가공 치즈 생산설비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지금은 회사 내 중요한 수익원이 됐지만 치즈사업을 하겠다고 김 회장이 결정했을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불황으로 시장수요가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고급 자연치즈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김 회장은 당시 이같은 반대에 대해 "치즈사업은 남아도는 우유문제를 해결해 30여년간 동반자 관계인 농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파트너였던 낙농가들이 우유가 남는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자 해결사를 자처했던 셈. 이웃 일본에서 몇년 전 와인붐이 일면서 자연치즈 시장이 급격히 늘어났던 일도 충분한 이유가 됐다.


그는 아울러 "나이 50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80대에 이른 만큼 치즈사업이 인생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사업이 되지 않겠느냐"며 임직원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결국 그의 주장대로 상하공장이 세워졌다.


마지막 숙원사업을 이뤘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김 회장은 준공 후 1년이 흐른 2004년 11월, 창업 초창기 낙농개발사업을 이끌었던 지도사원들의 모임인 매일유업 낙농OB팀 전원을 초청해 회동을 가졌다. 맨바닥에서 우리나라의 낙농산업의 기틀을 닦은 이들이었다. 김 회장은 이날 모임에서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며 이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했다.


◆'유기농'은 대(代)를 이은 가치투자 = 유기농 우유에 대한 집념도 인생 말미에 접어든 김 회장에게 중요 관심사였다. 김 회장은 유기농 사업의 메카로 고창군 상하면을 점찍은 터였다. 2005년부터 고창군과 이 지역 일대 낙농가와 손잡고 유기농 제품생산을 추진한 그는 결국 생전에 유기농 사업의 결실인 '매일 상하목장' 우유를 보진 못했다. 타계 하루 전까지 직접 공장과 일대 목장을 둘러봤을 만큼 김 회장은 유기농사업을 중시했다.


유기농 유제품 역시 개발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낙농가로서는 그동안 별탈없이 진행해 오던 일반우유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젖소를 적응시키는 일 자체가 모험이었던 셈. 실제 초창기 40여 농가가 유기농에 도전해 15곳만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을 정도다. 이번에도 김 회장은 손실에 대한 보전을 약속하며 직접 농가를 설득했다.


목장 운영 외에도 유기농 사업을 위해서는 생산설비도 이전과는 다른 것들이 필요했다. 김 회장은 100억원을 투자해 ESL시스템과 마이크로 필터레이션 공법 등 첨단 신규 설비를 갖췄다. 아울러 국내 유업계 최초로 유해 세균과 미생물을 완전히 걸러내주는 마이크로 필터레이션 공법을 도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농 우유를 통해 매일유업은 새로운 시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경쟁업체들의 추격 속에서도 50% 이상이라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생산량을 더 늘리고 싶어도 쉽지 않은 건 유기농 낙농가를 운영하는 데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친의 뜻을 이어받은 김정완 현 회장은 "당장 기업의 이익보다는 고창군의 농가들과 협력해 이 일대를 유기농의 메카로 만들고자 한다"며 "시장의 성장에 따른 유기농 낙농가를 추가로 발굴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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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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