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남성이 처제와 맺은 사실혼 관계가 항소심 재판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1992년 부인과 사별한 A씨는 사별 뒤 자신의 집에 드나들며 자녀들을 돌봐주던 본처 친동생 B씨와 1993년부터 한 집에 살았다. 본처 생전 처제이던 B씨와 부부의 연을 키워가던 A씨는 1995년부터 동료들에게 B씨를 부인으로 소개하는 등 본격적으로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B씨는 A씨 집으로 전입신고까지 했다.
국립대학 교수이던 A씨는 지난해 1월 사망했는데, 2003년 일을 그만둔 뒤 퇴직연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이에 B씨는 자신이 A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므로 유족에 해당한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유족연금 지급을 신청했고, 공단이 "B씨는 A씨와 인척 관계여서 당시 민법상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7부(고영한 부장판사)는 "B씨가 미혼으로 지내다가 A씨와 조카들을 위해 가정살림을 돕던 중 가족처럼 한 집에서 살았고 14년 동안 부부로 생활한 점, 가족들이 혼인 생활을 인정해온 점 등에 비춰보면 B씨와 A씨의 관계는 사실혼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성지용 부장판사)도 지난해 12월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당시 재판부는 "민법이 혼인을 금지하는 근친혼적 사실혼 관계에 대해서는 당사자 사이의 의사와 합치된 객관적 부부공동생활 실체, 공동생활 기간, 부부생활 안정성과 신뢰성, 가족 및 친지들이 혼인생활 실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왔는지 여부 등에 비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혼인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와 B씨가 14년 동안 사실상 부부로서 공동생활을 해온 점, 이들의 부부생활이 A씨 자녀들과 친척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던 점 등을 종합해 보면 A씨와 B씨 관계는 반윤리성·반공익성의 요청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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