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청와대가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대응조치 속도 조절에 나섰다.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의 어뢰공격에 따른 것으로 결론지은 이후 신속하고 강경한 입장을 취해오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칫 천안함 사태로 우리의 중도실용 기조가 흔들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며 "우리 정부의 중도실용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천안함 사태를 단호히 대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강경노선으로 간 게 아니냐는 오해, '전쟁이냐, 평화냐'는 야당의 이분법식 주장 등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차원"이라고 발언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6월로 접어들면서 천안함 대응 속도를 조절하면서 자연스럽게 출구전략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태를 장기적으로 끌고가기에는 경제·외교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꿈쩍않는 중국
한·일·중 3국 정상은 지난달 29~30일 제주도에서 열린 정상회의 공동발표문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천안함 문제를 적정하게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참여한 공동발표문에 천안함 사태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한걸음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중국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청와대에서 가진 한·중 양자회담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에게 100분 가까이 천안함 사태를 상세히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3국 정상회의에서 그나마 중국이 성의를 표시하는 선의 태도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더이상 진전된 모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 총리는 31일 하토야마 총리와 일본에서 가진 양자회담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중국측은 우리 정부가 여러차례 요청한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를 위한 국제조사단 파견 요청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않는 등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리스크 등 경제 악영향
국가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지난달 24일 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며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밝히고, 북한이 이에 대해 반발하며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자 주식·외환시장은 패닉상태가 됐다. 일부 시민들은 쌀·라면 사재기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여당이 북풍을 이용해 한반도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여당은 야당이 오히려 전쟁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인터넷에서는 허황된 전쟁설까지 떠돌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31일 "한국은 천안함 사태로 인해 증가한 북한 리스크를 견딜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1)에 대한 '안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이는 당분간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로 인한 긴장감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환율은 달러당 1200원대로 넘어섰고, 주식시장도 겨우 공포감에서 벗어난 정도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로 잊었던 한반도리스크가 시장에 다시 나타나 유럽 금융위기와 맞물려 시장에 악영향을 줘왔다"며 "한반도리스크를 장기간 가져가는 것은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좋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직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가 천안함 사태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천안함 사태 후속) 조치와는 별도로 국정은 정상적으로 차질없이 움직여야 한다. 특히 남유럽 사태 등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만큼 모든 상황을 더욱 철저하게 살피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경제에 대한 우려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G20정상회의, 세종시 등 현안 수두룩
오는 2일 지방선거 이후로 예정된 수많은 정치·외교 현안들도 관건이다.
당장 미뤄진 세종시 원안 수정과 관련해 국회가 결론을 지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태 이후 세종시 문제를 사실상 접고 당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마무리 되면 어떻게든 당론을 만들어 세종시 수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의 소신인 세종시 수정안을 가능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지방선거 이후 남은 임기 2년7개월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개각을 단행할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지금까지 임기를 유지해온 장관과 청와대 참모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각이 대규모로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서울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 지금처럼 남북간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무려 20개국의 정상이 서울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우리 정부에게 적지않은 부담감을 줄 수 있다. 앞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거나 교전이 벌어지게 되면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천안함 사태와 같은 안보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돼야 올해초 세워놓은 교육개혁 등 집권 후반기 국정현안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며 "6월 중순에는 상황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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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기자 yj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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