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환율은 하락하고 유가는 상승하면서 서울 주유소 휘발유가격이 드디어 1800원대까지 치솟았다. 단순한 상승세라기보다는 지붕을 뚫을 기세다. 휘발유가격은 전기요금, 가스요금, 버스 및 지하철, 택시요금 등과 같이 국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공공요금 중 하나다. 가격이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급등세를 이어갈 경우에는 주유소에 정유사에 정부에 분통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특히 유가가 오를 때는 금새 오르고 내릴 때는 찔끔 내린다는 생각에 불만은 더욱 크다.
◆환율 내리고 유가는 오르고.. 서울 휘발유 1800원대
17일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15일 마감기준으로 서울지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가격은 ℓ당 1801.04원이다. 올 들어 지난 1월1일 ℓ당 1711.84원으로 단기 저점을 기록했다가 몇 차례 등락하고 나서 지난달 3일 1750원대에 오른 이후부터는 연중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우는 중이다. 서울지역 주유소 보통휘발유 평균가격이 ℓ당 1800원대에 올랐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유가 상황을 맞았던 2008년 5월2일 ℓ당 1801.57원을 기록하면서다. 정유업게는 "4월 들어서도 국제유가가 계속 올라 여기에 영향을 받는 국내유가 상승세도 당분간 멈추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유가가 오르는 속도에 비해 휘발유가격이 오르는 속도, 폭이 너무 높다는 불만이다. 과연 그럴까. 1월 1일 전국 주유소 평균가격은 보통휘발유 기준 ℓ당 1641.20원에서 시작했다가 지난 15일 ℓ당 1728.67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ℓ당 87.47원이 올랐다. 인상폭은 5.3%다. 반면 1월 1일 국제유가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78.04달러였고 이달 15일에는 84.41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6.37달러가 올랐고 인상폭은 8.1%였다. 유가가 8.1%올랐을 때 휘발유가격은 5.3%올랐다. 실제로 휘발유 가격 인상폭이 유가인상폭보다 낮은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유가가 내릴때는 휘발유가격 인하폭이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가격의 비대칭성 논란이다. 가격조정의 비대칭은 최종제품 가격이 원료가격이 하락할 때보다 상승할 때에 더 크고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국내 석유시장에서 원유가격 변동에 대한 휘발유의 가격 조정이 비대칭적이라는 분석결과가 있다.
◆1월∼이달 15일 유가 8.1% 오르고 휘발유가격은 5.3%올라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고 이에 대한 반론과 논란도 만만치 않게 제기돼 왔다. 얼마전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려대 남재현 경제학과 교수팀에게 의뢰한 '국내 휘발유 가격의 비대칭성 분석'의 결과가 그렇다. 유가가 자유화된 시점인 지난 1997년 1월 이후 2008년 11월까지를 조사한 결과, 국제 유가가 1원 상승한 달에 국내 휘발유 세전 소매가격은 평균 0.55원, 이후 3개월 동안 1.15원 올랐지만 국제 휘발유가격이 1원 떨어진 달에는 0.30원, 이후 3개월 동안 0.93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휘발유 소비자가격에 빠르게 반영되는 반면 떨어질 때는 반영속도가 늦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의 단체인 석유협회측은 국제유가, 휘발유가격 변수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정유사 공급가격 책정기준은 원유가격기준과 국제 제품가격 기준이 혼재돼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가 자유화된 1997년 1월 이후 2001년 중반까지는 국제 원유가격에 연동해서 내수 석유 공장도 기준가격을 설정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국제석유제품 가격에 연동해 가격을 산정해 오고 있다. 국제 석유제품가격을 내수공장도 기준 가격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은 정유사가 발표하는 공장도 기준 가격을 가격 지표로 사용했는데 지난 2007년 6월부터는 정유사의 실제 판매가격이 공개되면서 연구의 기본적인 데이터인 통계 자체가 상이하다는 것.
◆가격비대칭 석유에만 존재하지 않아 폭리 결론은 어려워
에너지경제연구원도 휘발유 가격의 비대칭적 조정을 곧바로 정유회사의 폭리나 불공정행위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06년 실시한 연구에서 국제 원유가격과 대리점 판매 가격, 대리점 판매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 사이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 각각 비대칭성과 대칭성이 발견된 바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펠츠만 교수는 석유제품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에서도 비대칭성을 발견해 가격조정의 비대칭성을 매우 일반적인 현상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유사의 폭리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정유사들의 경영실적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엄밀한 분석이 요구된다"면서 "이와 함께 국내 석유시장에서 불공정거래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적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2월 세미나에서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 감시단은 지난 3개월 동안 국내 휘발유가격의 구성요소인 국제 휘발유가격과 정유사 유통비용, 세금,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 등을 바탕으로 가격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 휘발유가격과 정유사별 세전 공급가격의 등락형태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동향을 보였고 지난 2개월간 주유소가격의 최고와 최저간 가격 차이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했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각종 폭리의혹과 담합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아울러 내수 휘발유가격에 고율의 세금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보통휘발유 1ℓ에는 교통세(529.00원), 교육세(79.35원), 주행세(137.54원),부가세(74.59원) 등 포함해 820.48원이 세금이다. 최종소비자가격(지난 15일 ℓ당 1728.67원 기준)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 세금이다. 즉 유가가 10% 내려가도 절반에 이르는 세금은 그대로이고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제조원가나 유통마진 등에서만 인하 요인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유시장이 몇몇 업체가 과점한다고 비판하지만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과 비교하면 과점 비판은 맞지 않다"면서 "정유사의 영업이익률은 3%미만으로 폭리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석유 유통단계별 가격공개를 확대하고 석유수출입 규제를 완화해 경쟁을 유도하는 각종 법,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으나 정치권과 업계 등의 반발로 인해 아직 시행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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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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