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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와인과 프로이드, 아버지, 그리고 나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9초

[마니아]와인과 프로이드, 아버지,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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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어릴 적 와인에 얽힌 경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버지는 와인을 즐겨 드시곤 하셨는데, 나는 그 때 와인을 테이스팅 하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와인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독특한 제스처를 감상하며, 와인을 음미하면서 내뱉으시던 소중한 말씀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곤 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시곤 하셨는데, 그것은 그가 내 아버지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로이드 박사가 “의심 할 여지없이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남자는 일생동안 정복자의 감정을 지니고 산다” 라고 기록한 바 있지만, 아이들은 항상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한다), 와인을 음미하시면서 내뱉으시던 말들이 너무나도 풍부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말들이어서, 가끔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미지의 행성에서 오셔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신기한 말들을 내뱉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또 아마도 와인이 아버지의 혀 끝에 닿는 순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처럼, 마치 마법을 부린 듯 아버지가 갑자기 탁월한 영감을 받은 시인이 되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그렇게 특별한 문장들을 내뱉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혼란스러웠던 한편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심지어 아버지의 혀에는 수천 개의 센서들이 숨겨져 있어서, 이 각각의 센서들이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감각과 느낌을 아버지에게 전해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마다 결국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말들로 바뀌어 분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고,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밤 잠들기 전,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거울 앞에 몇 시간이고 서서, 내 ‘가여운’ 혀를 꼼꼼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미지의 센서를 반드시 찾아 내어 가여운 어린 소년으로서의 인생을 버리고, 마법과도 같은 매력적인 문장들을 쏟아내는 저명한 시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찰을 하면서, 나는 이렇게 꿈꾸곤 했다. “그래, 난 커서 아버지처럼 이 마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꿈도 컸다). 수많은 센서가 숨겨진 혀를 가지고, 너무나도 가뿐하게 풍부한 표현들을 쏟아내어, 모든 사람들이 나와 내가 가진 표현력에 대해 감탄하고 부러워할 수 있도록 말야. 그래, …그렇게 되면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의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언변에 넘어가 나를 사랑하게 될꺼야!”


나의 미래는 확실했고, 온통 장미빛이었다. 나는 기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 아니 프로이드 (그리고 내 무의식), 아니 누가 되었건, 그 누군가가 내 운명을 다른 식으로 결정해 버렸다. 센서로 가득찬 혀를 가지고 ‘돈주앙’으로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내 허황된 꿈을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내 아버지가 가진 뛰어난 미각을 타고 나지 못했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하게 된 여자도 없었다…물론, 내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내 마음 속 깊은 한 편으로는 나는 이 ‘슬픈’ 와인 이야기로 인해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경험으로 인해 돈주앙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면, 한편 이 경험을 통해 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교훈은 바로, 와인 테이스팅은 과학이 아니므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와인 테이스팅에는 정답이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당신의 친구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친구는 담배의 맛을 느끼지만, 당신은 가죽 맛을 느낄 수도 있다 (실제 와인 속에는 가죽과 담배 맛이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와인을 테이스팅하면 할수록 그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훌륭한 미각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버지,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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