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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DNA] '무역으로 經世保國' 혜안 글로벌 삼성 잉태

재계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DNA서 찾는다

삼성그룹 호암 이병철 ①


1938년 中·日전쟁 시련 딛고 삼성상회 창업
6·25 전쟁 폐허 속 1953년 제일제당 만들어
5·16땐 "공장지어 愛國" 박정희와 담판도

[아시아경제 우경희 기자]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삼성의 뒤에는 재계의 거목, 호암 고(故) 이병철 회장이 있다. 여느 창업주와 마찬가지로 그의 생애도 역사의 질곡에 얽힌 실패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젊은 나이에 매번 성공을 거두고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폐허에서 재기하기를 몇 차례, 호암이 이 위기를 딛고 삼성의 초석이 닦을 수 있던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이른 성공과 큰 실패, 실패에서 태동한 '삼성' = 호암 이병철 회장은 잘 알려진대로 의령의 거부집안에서 태어났다. 호암의 조부와 부친은 유교집안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다니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한 호암에게 300석의 땅을 장사밑천으로 대 준다.


호암은 친구와 동업해 1936년 마산에 마산합동정미소를 세워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같은 해 히노데자동차회사를 인수해 당시로는 지금의 비행기나 마찬가지이던 자동차도 20여대나 확보했다.


돈을 버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정미소 영업은 녹록치가 않았다. 뒷날 이 시기를 생각하며 호암은 "쌀값이 쌀 때 사서 오를 때 파는 장사의 기본적 원리도 몰랐다"고 회고했다. 장사의 기본을 깨치고 나서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젊은 호암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이었다.


돈을 번 호암은 낮에는 돈 버는 것을 구경하고 밤에는 주색을 즐겼다. 이 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듬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고 호암에게도 첫 번째 시련이 닥쳐온다.


전쟁이 나자 은행은 융자를 중단하고 융자해 준 대금을 회수했으며 금리가 치솟았다. 결국 호암은 정미소와 히노데자동차는 물론 가지고 있던 땅도 모두 팔아야 했다. 한 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셈이다.


시련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삼성의 DNA가 바로 이순간 탄생했다. 빈손이 된 호암은 두 달여에 걸쳐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 상해까지 천하를 주유한다. 눈이 번쩍 뜨였다. 넓은 세상과 큰 사업이 호암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눈을 넓혔다.


고향으로 돌아와 절치부심하던 호암은 이듬해인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열고 무역업을 시작한다. 오늘날 글로벌 브랜드가치 20위권을 자랑하며 20만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기업 삼성이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 또 실패, 질곡 속에서 발견한 '거부의 길' = 이후 호암은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고 조선민보를 인수, 대구민보로 제호를 바꿔 신문을 내는 등 언론과도 인연을 맺었다. 1947년에는 더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이사, 이듬해 종로에 삼성물산공사를 태동시킨다. 오징어를 수출하고 면포를 수입했다. 수입품목은 금세 100여개로 늘어났다.


1950년 일본산업시찰단으로 일본을 방문, 2차대전의 폐허를 목격한 이 전 회장이 귀국하자마자 청천벽력같은 일이 터졌으니 바로 6.25사변이다. 1.4 후퇴 때 긴 길을 되짚어 호암도 고향 대구로 돌아온다. 어렵게 일군 사업이 다시 한 순간 외부 변수에 의해서 일거에 주저앉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를 겪은 호암은 이미 강해져있었다. 고향의 양조장에서 벌어둔 자금을 바탕으로 부산에 1951년 다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세웠다. 창립 1년 만에 사세를 키우고 1953년에는 마침내 제일제당을 창업한다. 호암은 뒷날 "천하제일 제일주의의 삼성정신은 그때 했던 작명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술회했다.


이듬해인 1954년에는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호암은 생전에 "이병철이 모직공장을 세운다니까 그 공장에서 모직이 나오면 새가 돼 하늘을 날아가겠다는 미국인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2년 만에 시운전을 해 모직을 생산했었다"고 돌아봤다. 이때 생산된 모직제품의 브랜드가 바로 '골든텍스'다.


◆ 물러날 때를 아는 과감한 승부사, 100년 삼성시대 열다 = 한국비료공장 건설 추진차 일본에 머물던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터진다. 국내에 있던 유력 경제인들이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고 호암 역시 예외없이 수배령이 내려진다.


일본 경찰에서 호암의 영향력을 알고 신병 보호를 제의했으나 호암은 이를 거부하고 일생의 승부수를 던진다 "귀국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것. 국내외 기자들이 이 소식을 급히 타전했고 호암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해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만난다.


호암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재산몰수 등의 방법이 아닌 공장 건설로 국가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한다. 박 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투자명령'이라는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기업인들을 사면한다. 호암의 승부수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한국비료공장 건설 역시 적극 추진된다. 1964년 완공된 35만평 규모 당대 세계 최대 규모 비료공장은 그렇게 완공됐다.


피와 땀이 밴 한국비료였지만 뒷날 사카린원료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호암은 이 또한 미련 없이 포기하고 다른 사업부로 눈을 돌린다. 작은 이익에 집착해 큰 기회를 놓쳤다면 지금의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탑 기업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호암은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업을 추진해도 그 사업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호암은 생전에 "실패도 재산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는 그대로 호암의 경영철학이 돼 '최선을 다했다면 일이 잘못되더라도 하나의 재산이 된다'는 삼성의 경영관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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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khwoo@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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