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뇨끼(Noqui)"
아르헨티나 관공서에 가 공무원 느낌이 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말을 건다면? 아마 당신은 그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도대체 '뇨끼'가 무슨 뜻이길래 공무원들이 이렇게 발끈하는 것일까?
파스타의 일종인 '뇨끼(Noqui)'는 삶은 감자를 으깨어 만든 음식으로, 쉽게 말해 이탈리아식 수제비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요리인데, 아르헨티나에선 매달 29일을 '뇨끼의 날(디아 델 뇨끼)'로 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서려 있다. 못 살던 시절, 매월 말일이 되면 돈이 떨어져 가장 값이 싼 뇨끼로 끼니를 때웠던 것에서 유래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달력에 체크돼 있지는 않지만, 아르헨티나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날이다.
이 이탈리아식 수제비가 아르헨티나 공무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르헨티나 관공서에는 정식 시험을 치루지 않는, 소위 빽으로 입사한 '낙하산 공무원'들이 태반이다. 아르헨티나의 한 사립통계기관 자료에 따르면 이런 '낙하산 공무원'의 숫자가 무려 8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동· 면사무소의 허드렛일부터 국가 운영의 핵심 역할을 하는 국세청,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해 공무원을 뽑는 나쁜 관행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 중엔 소신 있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형사소송에 말리지 않는 한 잘리지 않는 '철밥통'의 직위를 악용, 국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노동시간만을 때울 뿐이다. 슬렁슬렁 자리에만 앉아 있다가 월급만 꼬박꼬박 챙겨가는 식이다.
어느 관공소를 가든 민원을 처리하고, 안내를 해주는 사람은 딱 한명이다. 나머지 10여 명의 사람들은 휴게실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쓸데없는 잡담으로 하루하루를 떼우고 있다. 이들에게 밀려있는 민원은 관심 밖이다. 머리 속에는 온통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안일한 생각 뿐이니까… .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런 몰상식한 공무원들을 '뇨끼'에 빗대 조롱한다. 이들의 월급날이 뇨끼의 날인 29일이기 때문에 생겨난 별칭이다. 힘들게 한 달을 보낸 서민들은 29일이 되면 돈이 없어 뇨끼로 끼니를 때우는데, 한달 내내 펑펑 놀던 공무원들은 이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걸 못마땅하게 여겨 붙여지게 된 별칭이다. 공무원들이 이 별칭을 싫어하는 건 물론이다.
이 같은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현 시장인 마우리시오 마끄리 씨가 부에노스아이레스시(市) 공무원 뇨끼 없애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시에선 시민들이 '뇨끼 공무원'들을 신고할 수 있는 홈페이지 (https://www.compromisolaboral.gob.ar/default.aspx)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적발된 뇨끼 공무원들은 경중에 따라 감봉· 퇴직 등의 엄한 문책이 뒤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뇨끼 척결 운동'이 시작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공무원들의 업무속도가 한결 빨라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가 자동차면허증 갱신이다. '뇨끼 척결운동' 시작 전 자동차면허증을 갱신하려면 평균 5시간 이상이 소요됐지만, 지금은 갱신하는데 1시간밖에 안 걸린다. 이런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자, '뇨끼 척결운동'을 다른 시, 구청에도 전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기세등등하면서 국민을 우습게 여겼던 '철밥통 공무원'들이 최근 들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김영식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김영식 씨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IT와 자동차,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는 영식 씨는 부에노스아이레스 KBC센터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서 통역 및 지원업무를 담당한 바 있는 24살 열혈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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