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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피플&뉴앵글] 대접받는 '미운 오리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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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피플&뉴앵글] 대접받는 '미운 오리새끼들' 덴마크 오덴세 안데르센박물관 앞에서 본 오리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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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엄마! 조금만 기다려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 내가 올림픽 나가서 메달 따가지고 아파트 사가지고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무조건…." (영화 국가대표 中)

영화 '국가대표' 속 차현태(하정우 분)가 나가노올림픽에서 돌아온 뒤 공항에서 친엄마를 향해 내질렀던 이 대사는 관객들의 눈시울을 촉촉이 적시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현태는 어릴 적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스키점프 국가대표로 뛰게 된 것도 친엄마를 찾기 위함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입양아는 항상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국가대표' 속 현태가 그랬고,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무혁이(소지섭 분)가 그랬다. '왕꽃선녀님'의 윤초원(이다해 분)은 드라마 속에서 ‘개구멍받이’로 표현되며,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항상 동정의 대상으로 비쳐졌다. 한때 입양아들을 가리켜 '미운 오리새끼'에 빗대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서 부모와 형제들에게 구박받다 뛰쳐나와 나중에 멋진 백조가 되는 그 미운 오리새끼 말이다.


[영피플&뉴앵글] 대접받는 '미운 오리새끼들' 국가대표 포스터. 아시아경제 DB

이런 생각은 최근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입양아에 대해 물어본 적 있다. 친구들에게 "여기 덴마크에는 입양아가 참 많은데, 너네들은 입양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의 십중팔구(十中八九)가 "불쌍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입양아들의 현주소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덴마크에 있는 1만여 명(덴마크 교민사회의 규모가 250여명인 것에 비하면 40배가 넘는 수준이다)에 이르는 한국인 입양아 중 누구도 스스로를 '미운 오리새끼'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내가 만났던 한국인 입양아들 대부분은 한국을 좋아했다. 친부모와 연락하고, 한국에 대해 알기 위해 공부했다. 친부모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정도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들이 이처럼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입양아에 대한 덴마크 사람들의 삐뚤어지지 않은 인식과 시스템의 영향 때문이다. 실제로 덴마크가 속한 북유럽 지역은 인종차별이 적은 데다, 엄격한 입양 시스템을 도입해 '자격 없는' 양부모들을 걸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헛된 욕심을 부리는 양부모로부터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것이다. '검증 받은' 양부모들은 입양아들을 친자식 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기른다. 입양아와 함께 한국어· 한국문화를 배우는 양부모들도 여럿 봤다.

이런 양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미운 오리새끼의 불쌍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이들에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한국 속담을 건네면, 놀라 뒤로 자빠질 것이다. 덴마크에 있는 1만여 명의 한국인 입양아들만 해도 어엿한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해외로 보내지는 현실은 슬픈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을 색안경을 낀 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입양아들을 감히 미운 오리새끼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나 있을까?' 울다 웃다가 두 시간 동안 국가대표를 보면서 불현듯 스쳐갔던 생각이다.




글= 성연란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덴마크 코펜하겐경영학교에 다니는 성연란 씨는 학교보다는 여행이, 남자보다는 공부가, 동료보다는 친구가 좋은 고집쟁이 22세 학생이다. 무턱대고 홀로 떠났던 호주에서의 1년이 너무나 좋아서 이번엔 유럽으로 떠났다.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다 타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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