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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운명의 수레바퀴

시계아이콘01분 37초 소요

〈이번 주부터 토포하우스(www.topohaus.com)의 오현금 사장님께서 경제레터 필진에 합류합니다. 오 사장님은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아트&디자인 갤러리 부문에서 새로운 영역을 찾는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오랜 외국생활과 국내외 대학의 강단, 아트&갤러리 분야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녹여내는 오 사장님의 톡톡튀는 글들은 새로운 하루를 설계하는데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을이 짙은 토요일 아침, 일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나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호사를 누리고자 혼자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파리보다 더 매력적인 프랑스 패션작가 사라 문의 사진 전시를 보았습니다. 1941년 태어난 사라 문은 9년간 오뜨 꾸뛰르에서 패션 모델로 유럽에서 활동한 후 29세에 카메라와 만났습니다. 드가의 그림처럼 흐릿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주는 사라 문의 사진들 앞에서 나는 멋진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통한 떨림과 더불어 전시장 가운데에 마련된 조그만 부스에서 15분짜리 단편영화 “서커스”를 볼 수 있는 건 큰 축복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사라 문의 방식으로 영상 작업을 한 것입니다.


“좋지 않은 한 해였다.


서커스 단원 나타샤는 눈이 오는 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국인 연인과 떠나버린다. 단원들은 하나 둘 떠나가지만 둘째 딸 잔느는 엄마를 기다린다. 사랑에 빠져 서커스장을 떠나버린 엄마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날이다. 그러나 서커스에는 불이 켜지지 않는다.


눈이 내린다.


잔느는 금색 드레스를 입고 성냥을 팔러 나간다. 뛴다. 이 거리 저 거리를, 기차역에 도착한다. 한 해의 마지막 저녁,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도로 중앙에서 성냥을 사라고 외쳐보지만 아무도 없다. 트럭이 휙 지나가고 하마터면 잔느는 죽을 뻔 했다.


성냥으로 몸을 녹이고, 눈을 감고 꿈을 꾼다. 별이 떨어지고, 성냥불을 지핀다. 그러자 운명의 수레바퀴에 달려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잔느는 죽고...


또 다시 눈이 내린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머리 속에는 숱한 생각이 엉키고 가슴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 안타까움, 애잔함으로 절로 눈물이 납니다.


20년 전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드나들던 파리 퐁피두센터. 도서관 가운데 있는 조그만 부스에서는 좋은 필름이 매일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 부스 속에 넣어두고 싶었습니다. 잠시라도. 하지만 논문을 빨리 써야하기에 1분도 낭비할 수가 없었고 두 아이를 돌봐야하는 엄마였기에 1초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안타까움만 잔뜩 안고 기웃거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또한 여유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커스’의 영상이 계속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잔느의 죽음-그래 맞다. 엄마를 기다리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엄마를 꿈꾸며 죽는 어린 소녀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잔느의 죽음보다 더 공감하는 것은 나타샤의 탈출입니다. 모든 것, 즉 일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자신의 터전을 떠나버릴 수 있었던 나타샤처럼 나도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게 아닌지요. 내 나이쯤의 우리 모두가 한번쯤 가져볼 수 있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을은 짙고 낙엽은 떨어지는데 일상을 모두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달려있건 말입니다.

토포하우스 오현금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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