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짠순이'다.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점심을 굶어가며 아껴 모은 돈 4000엔(한화 약 5만2000원). 다른 사람들한텐 적을지 몰라도, 나에겐 큰돈이다. 오늘 난 싹싹 긁어모은 돈 4000엔을 들고 과감하게 쇼핑에 나섰다.
사실 4000엔으로 쇼핑한다는 게 쉽지 않다. 유명 브랜드숍에서 옷이나 신발을 사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래서 오늘 쇼핑의 타깃으로 정한 지역이 '카치죠지'와 '시모키타자와'다. 이곳에는 값싸고 질 좋은 옷들을 파는 '구제숍'들이 많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비하면 너무나 '착한 가격'이다. 오늘 내가 사고자 하는 아이템은 체크남방과 바지. 돈이 남는다면 다양한 패션 소품도 사볼 생각이다. 일단 체크무늬 남방을 사기 위해 '카치죠지'를 들렀다.
키치죠지에는 구제숍들이 꽤 있는데, 이곳은 하라주쿠의 프리마켓처럼 넓지도 않아, 간단하게 옷가지 몇 개를 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키치죠지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마루이치백화점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줄지어 늘어선 '예쁜 구제숍'들 중 한 곳을 찍어 들어갔다. 키치죠지 유일의 2층 구제숍이다.
안에 들어가자 예쁜 남방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이 옷을 살까? 저 옷을 살까?' 한참을 망설이다 선택한 옷은 빨강과 파랑, 보라, 연두 체크가 들어간 남방. 아무 옷에나 걸쳐 입어도 예쁠 것 같아 과감하게 샀다. 가격은 단돈 700엔(한화 약 9000원).
남방을 생각보다 싼 가격에 구입하자, 패션소품도 하나 사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키치죠지에 있는 '안경가게'. 안경테를 도매가격으로 파는 이곳에서 착용감 좋고 색감 예쁜 '파란색 안경'을 하나 구입했다. 가격은 1000엔(한화 약 1만3000원).
남방과 안경을 사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모키타자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바지를 사기위해 평소 즐겨 찾는 '줄리오(Julio) 700엔숍'을 들렀다. 이곳에선 재킷, 치마, 원피스, 바지 등을 모두 700엔에 판다. 그렇다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잘 찾아보면 새 옷 같은 옷도 너무 많다.
바지 코너를 열심히 뒤져 마음에 쏙 드는 바지를 하나 찾았다. 원래는 긴 바지 같았는데 반바지로 리폼 한듯 하다. 입어보니 모양도 괜찮고, 맵시도 산다. 주저 없이 700엔을 주고 이 바지도 구입했다. 남방과 바지, 안경테까지 구입했는데, 아직도 돈이 1600엔(한화 약 2만1000원)이나 남았다.
돈이 남으니 허전한 바지에 걸칠 만한 패션 소품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모키타자와'를 돌아다녔다. 역 근처 쪽에 여러 가게가 뭉쳐져 있는 곳이 있었다. 동굴 구조로 돼 있는 이곳을 돌아다니다 수제 패션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휴대폰 줄부터 귀걸이, 목걸이 등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그곳에서 바지 뒤에 달만한 액세서리를 하나 발견했다. 원래는 휴대폰 줄이지만, 바지에 달아도 예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1050엔(한화 약 1만4000원)에 구입했다. 작은 신발과 하트모양의 귀여운 쿠션 위에 박혀있는 체크리본, 그리고 미니 보석이 앙증맞게 박혀있는 예쁜 아이템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카치죠지'와 '시모키타자와'를 돌아다녀 남방과 바지, 안경테,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는데 쓴 돈은 3450엔(한화 약 4만5000원). 과감하게 지른다고 질렀는데도 550엔(한화 약 7200원)이나 남았다. 남은 돈으로는 근처 분식점에서 친구들과 기쁜 마음으로 군것질을 했다.
지갑이 얄팍해졌어도 사야 할 것은 줄어들지 않는 게 '여자'다. 유학 생활이 길어질수록 적은 돈으로 폼 나게 쇼핑하는 '알뜰쇼핑 노하우'들을 나도 모르게 하나 둘씩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글= 강수민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현재 일본에서 어학 중인 강수민 씨는 문화복장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패션과 사진, 음악 등에 관심이 많고, 웹매거진에서 리포터를 했던 경험도 있다.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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