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윈 카렌. 너무 가난해 검은 구두조차 없던 카렌은 장례식장에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난다. 이런 카렌을 어여삐 여긴 한 노부인은 그녀를 데려다 키운다. 소녀는 이런 행운이 모두 빨간 구두 덕분이라고 믿는다. 어느 날 카렌은 검은 구두를 사라는 할머니의 당부에도 빨간 구두를 냉큼 사버린다. 그 구두를 신고 춤을 추던 카렌은 실수로 할머니를 발로 찼고, 할머니는 앓아눕는다. 하지만 카렌은 병상에 있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몰래 빨간 구두를 신고 나간다. 그러던 중 카렌은 한 노인을 만나 호되게 혼나고, 빨간 구두를 신은 채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저주에 걸린다. 카렌은 저주를 풀기 위해 스스로 다리를 자르고, 목발을 짚으면서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된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 〉
'빨간 구두'.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동화다. 어린 소녀의 구두에 대한 욕심은 단순히 '치기어린 욕심'으로 볼 수 있는데, 동화 속 여주인공 카렌은 그 때문에 천사에게 저주를 받고, 발목까지 자르는 비극을 맞게 됐으니 말이다.
'빨간 구두'에 숨겨진 속뜻을 알게 되면 더 오싹하다. 소설이나 동화 속 구두는 여자에게 있어 단순한 신발이 아닌, 욕구를 채워주는 매개체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는 운명을 바꿔주었고,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구두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도구였다. 게다가 '빨강'이란 색은 퇴폐적 욕망을 상징하는 색이다. 결국 카렌이 신은 '빨간 구두'는 여자들이 내면에 감추고 있는 퇴폐적 욕망· 본능을 분출하는 매개체인 셈이다. 그리고 여주인공 카렌의 비극적인 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여자가 겪는 시련과 고통, 그리고 비참한 말로를 안데르센은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세기 전 얘기다. 시대는 변했다.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 채, 주어진 삶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는 21세기에선 보기 힘들다. 안데르센의 고향인 덴마크 여자들은 특히 그렇다. 북유럽 여성답게 키도 크고, 골격도 큰 덴마크 여성들은 스스로를 꾸밀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얘기할 줄도 안다. 마치 빨간 구두를 신은 카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간혹 억세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데, 단적인 예가 길거리에서 남녀가 싸울 때다. 길거리 싸움은 여자들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 어떤 때에는 길 한복판에서 남자를 패는 여자를 볼 때도 있다. 물론 이는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면 바로 쇠고랑을 차게 만드는 '덴마크 법률' 탓이 크다. 하지만 덴마크 여자들의 적극적이고 당찬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발목을 잘라야 했던 안타까운 소녀 '카렌'의 모습은 더 이상 덴마크 여자들에게서 찾기 어렵다.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카렌과 같은 수동적인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 본인이 구해줬던 왕자에게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버림받은 인어공주가 그렇고, 백조왕자의 오빠들을 위해 독초로 옷을 만들었던 여동생이 그렇다. 호두까기 인형의 발레리나, 두꺼비와 들쥐에게 시집가야 했던 엄지공주도 수동적인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의 사회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동화 속 수동적인 여자들은 현실 속에선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살아가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여자를 원하는가 보다. 우리나라 남자들만 해도 여전히 '콩쥐'나 '장화홍련'같은 여자를 이상형이라고 말하니까…. 검은 구두(욕망 억제)를 신은 채 한 곳만을 바라봤던 청순가련형 '인어공주'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그렸던 19세기 안데르센처럼 말이다.
글= 성연란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덴마크 코펜하겐경영학교에 다니는 성연란 씨는 학교보다는 여행이, 남자보다는 공부가, 동료보다는 친구가 좋은 고집쟁이 22세 학생이다. 무턱대고 홀로 떠났던 호주에서의 1년이 너무나 좋아서 이번엔 유럽으로 떠났다.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다 타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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