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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영화 '내 사랑 내 곁에'를 보면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극중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춘자 역의 임성민이다.
임성민의 등장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대사나 표정 변화가 전혀 없는 식물인간 역할인 데다 삭발까지 감행했기 때문이다. 연기 9년차 배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었다.
임성민은 여전히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씨름 중이었다. 방송 관련 직업 중 가장 정형화돼 있고 고정관념에 싸여있는 업종 중 하나인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과거가 9년차 배우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출연 비중과 관계없이 '내 사랑 내 곁에'의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로 "아나운서라는 직업과 전혀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말이 없는 역할을 기꺼이 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처음에는 박진표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살결이 곱고 눈부신 예쁜 역할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보다는 대사가 없는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메이크업을 하고 말만 하면 아나운서 같다고 말하시니 말이 없고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죠. 원래는 대사가 있는 판타지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됐어요."
대사 하나도 없는 역할인데 박진표 감독은 왜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한 얼굴을 쓰려고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면 단지 김명민이 있는 병실에 있는 누군가로만 생각하고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에도 삭발한다는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러다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즉흥적으로 말씀하셨죠. 하겠다고 했어요. 춘자에겐 짧은 머리가 어울릴 것 같았어요. 2주간 정말 고민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죠. 머리를 자른 것 자체도 연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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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민은 처음에는 환자 역할을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누워서 꼼짝 않고 있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도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종합병원에 가서 환자들의 표정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죠."
영화만 보면 임성민은 단지 누워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희생이 뒤따랐다. 그는 환자들이나 보호자 가족들의 슬픈 기운을 느껴서인지 촬영하는 동안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극중 춘자의 표정은 무표정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슬픔의 깊이가 슬쩍 엿보인다. 당연히 춘자에게서 '아나운서 임성민'의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성민에게 '내 사랑 내 곁에'는 아나운서 역할로 잠깐 나왔던 '투사부일체'를 제외하고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이후 6년 만의 영화다. 어릴 적 품었던 배우의 꿈을 뒤늦게 펼치기 시작한 그는 아나운서를 그만둔 뒤 9년간 평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아나운서를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아나운서를 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있다"는 말이 '왜 잘하던 아나운서를 그만뒀느냐'는 편견 어린 시선에 답이 될 것이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임성민에게 조금 과장을 보태 '절치부심'이고 '와신상담'이다. 연기에 대한 임성민의 순수한 열정이 관객들의 마음에 전달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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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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