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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직칼럼] 정운찬 내정자에 묻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운찬 카드'는 예상치 못했던 승부수다. 중도실용노선을 표방하고 친서민 행보와 소통을 앞세우고 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다목적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어수선한 충청권의 민심을 수습하고 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를 포용하며 당내에서는 자칫 한 편으로 쏠리기 쉬운 조기 레임덕 현상에 균형추를 단 셈이 됐다. MB의 모험이 어디까지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행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총리 내정자는 지명 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학자로서 현 정부를 비판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 해보니 경제철학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대통령을 잘 보필해 경제를 살리고 통합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총리직 수락을 위한 단 한차례의 만남에서 국가 운영과 노선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쌓고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기로 했는지는 둘 만이 아는 일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역할과 권한에 많은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나 김대중정부의 김종필 총리처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실세형 총리'가 있는가 하면 현 한승수 총리처럼 국정조정 기능에 충실한 '관리형 총리'가 있고 각종 행사나 다니며 얼굴이나 내미는 '얼굴마담형 총리' 등 여건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넉달 만에 경질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의 조합은 정책과 보고 체제 등을 싸고 갈등을 빚다 감정싸움까지 비화돼 조기 하차하는 좋지 않은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정 총리 내정자는 어떤 모습의 총리가 될까,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 대통령도, 정 총리 내정자 자신도 모험을 선택한 만큼 '관리형'이나 '얼굴마담형' 총리에 그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가 실세 총리로 부상한다면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답게 경제에서부터 자신의 소신을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 있는 현 상황에서 경제문제를 피해간다면 이 또한 '출사'의 이유가 없어진다. 과연 신자유주의자들이 포진한 이명박 정부와 케인즈주의자인 총리 내정자가 어떻게 정책을 조율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대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도 있지만 새 정부 경제팀이 만든 것도 많다. 무엇보다 대내적 불확실성은 새 정부 경제팀의 철학이 불분명하다는데서 비롯됐다. 감세가 실제 경제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다" 정 총리 내정자가 지난해 한 학술지에 기고한 글이다. 당장 현 정부가 성역으로 여기는 '감세 기조'부터 부정하고 있다.


또 이 대통령이 '필수적 긴급 사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4대강 사업 만해도 정 총리 내정자는 "가뜩이나 거품이 끼어 있는 시점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거품을 더욱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었고 '규제 완화'도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었다. 경제 뿐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교육부는 고등교육에서 손을 떼라'고 질타하며 3불정책의 폐지도 주장했다.


누가 봐도 이념과 정책에서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국민들의 삶에서 정 내정자가 자신의 소신을 얼마나 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명박정부의 '2% 정치'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가 나설 이유가 없다. 지명 첫날 세종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듯 그 앞에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국민의 시각에서 헤쳐 나갈 용기는 있는지 묻고 싶다. 그의 커밍아웃이 "논에 장미를 심은 격"이 되지 않길, "변절한 지식인의 한사람"이 되기 않길 바란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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