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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진원지 美-유럽 들여다보니

꼭 1년 전 전 세계 금융시장은 공포 그 자체였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금융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무너뜨리는 분수령이 되었고, 실물경기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이 마비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다.


채권과 파생상품 거래를 핵심 사업으로 하던 리먼 브러더스가 금융시스템의 중추가 아니라는 정책자들의 안이한 판단이 뇌관을 터뜨린 격이었다. 금융시장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사업자가 무너졌을 뿐인데 그 파장이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자 당시 정책자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년이 지나는 사이 금융시장과 실물 경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 정책자들 사이에 경기 회복의 '어린 싹'이 돋아났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포함한 주요 경제 지표가 자유낙하를 멈췄다. 대공황 이후 최대 경기침체에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으로 대응한 결과다.


4~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4월 회의가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가득했던 것과 달리 이번 회의에 참석한 금융정상들의 표정에서 급한 불을 끈 데 따른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이르다. 위기의 단초였던 부동산 시장의 부실은 서브프라임(비우량등급)에서 프라임(우량등급)으로 확산될 뿐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이라는 제2의 뇌관이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얼어붙었던 금융시장의 '돈줄'이 다시 돌기시작하면서 신용경색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은행 여신 기능의 복원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 신용경색 해소 절반의 성공 = 패색이 짙었던 금융시장이 일정 부분 혈색을 되찾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이라는 인공적인 장치에 의존해 혈액이 돌고 있을 뿐 심장이 스스로 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당시 5% 선을 위협 했던 달러화 리보금리는 0.31%까지 하락했고, 리보-OIS스프레드 역시 13bp까지 하락해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말했던 '정상 수준' 25bp보다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지표에 가려진 현실은 여전히 어둡다. 7월 말까지 12개월 동안 미국 M1은 17.4% 증가한 데 반해 M2는 8.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유럽의 상황은 더 부진하다. 같은 기간 M1이 12.2% 증가했고, M2 증가는 9.4%로 집계됐다. 뿐만 아니라 비금융권에 대한 은행 여신은 7월 현재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공급한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실물 경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역류하면서 정책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급기야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은행은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0.25%의 금리를 부과하는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주요국의 양적완화가 기여한 부분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씻어냈고, 금리를 떨어뜨려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췄다. 리보금리 하락에서 보듯 신용경색을 일정 부분 해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 조 달러에 달하는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부작용 없이 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공급한 유동성이 지나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명확하지 않다. 손에 쥔 사과가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판단하기 힘든 답답한 상황에 이른 셈이다.


◆ 모기지 부실 '휴화산' = 위기의 진원지인 주택 및 상업용 모기지 역시 부실의 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황이다. 오히려 주택 압류와 연체가 비우량등급에서 우량등급으로 확산되고 있고, 상업용 부동산의 압류가 2차 금융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경고음이 날로 높아진다.


주택 거래가 늘고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S&P케이스쉴러 지수가 오름세를 타고 있지만 실상을 보면 그리 고무적이지 않다. 손바뀜이 일어난 주택 세 채 중 한 채는 차압 물건이며, 올 연말 일몰시한을 맞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의 세제 지원이 종료되면 거래 증가와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기 힘들 전망이다.


모기지은행연합회(MBA)에 따르면 최근 들어 발생한 신규 주택압류의 1/3이 프라임 모기지에서 발생한 사실도 2차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상업용 부동산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리얼포인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상업용 부동산의 연체율은 3.14%로 전년 동기에 비해 6배 이상 증가했다. 도이체방크는 오는 2012년 만기가 도래하는 1530억 달러의 상업용모기지담보대출(CMBS) 가운데 1000억 달러는 차환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대출업체 캡마크가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맥과이어 역시 파산 위기에 처하는 등 관련 업계에 잠재돼 있던 부실이 수면위로 속속 드러나는 모습이다. 업계 전문가는 상업용 부동산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부실의 뇌관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는 것. 상업용 모기지의 부실은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은행 파산 압력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와 감독 당국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 2010년이 더 걱정 =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후 주요국이 공격적인 경기부양에 나섰을 당시 경제학자들 사이에 2009년보다 2010년이 더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극약 처방으로 2009년 미국 및 유럽 경제가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과 함께 약효가 사라지는 2010년 이후의 경기 향방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극약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비관론마저 등장했다.


이 같은 우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의원은 2010년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소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에도 경기회복의 '어린 싹'이 계속 자라나려면 기업과 소비자 등 민간 부문의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실업률이 9.7%까지 치솟은 데다 상업용 모기지의 부실로 2차 금융위기가 우려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경기부양의 주체가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출구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경기부양책을 중단했을 때 과연 글로벌 금융권과 실물 경기가 견딜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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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금융위기를 일으킨 것은 결국 금융시스템에 내재된 리스크였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유동성 펌프질로 신용 경색을 해소하는 데 급급했을 뿐 정작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1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이 시행한 양적완화 정책에는 '비전통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전례 없는 처방은 동원해 급한 불을 가까스로 진화했지만 위기 진원지의 꺼지지 않은 '속 불'을 다스리는 것이 지금부터 풀어내야 할 과제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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