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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떠나는 전라도 여행[27]

나해철 시인의 남도의 흰 빛 그리고 푸른 빛<4>

고려 청자 조각의 푸른 비색, 그 남도의 빛이 마음에 들어와



이영탄(43)은 남도의 푸른 빛에 삶을 의탁하고 운명처럼 청자 그릇을 빚는 사람이다. 원래아주 젊어서는 불교조각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향(강진군 대구면 저두리)에 들렀을 때 도랑에 지천으로 있는 고려 청자 그릇들의 파편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어렸을 때부터 무심히 보아왔던 고려 청자 조각의 푸른 비색, 그 남도의 빛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박히게 된 것이다. 그 후 바로 고향, 그 자리에 집을 짓고 고려청자를 연구하고 빚기 시작한다.

그의 집(금릉도요)을 찾아가면서 우리 일행들은 좁은 농로에서 그의 집을 지나쳤다. 좁은 농로 곁에 있었건만 도무지 예술가의 작업실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낮은 지붕에다가 크기도 작아서 여느 작은 농가처럼 보였던 것이다.


남도의 예술가는 특히 더 가난과 친하다. 이영탄도 불교 조각을 계속하고 살았더라면 지금쯤 서울에서 작은 건물 하나는 가지고 살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찰들에서 계속 크고 작은 불사를 해온 20세기말과 21세기 초가 아니던가. 그의 후배들 까지도 경제적으로는 그보다 낫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도 남도의 예술가들은 다른 곳의 예술가들보다 유달리 가난에 친숙하다.

작은 집 한 채로 되어 있는 가난한 그의 살림집 겸 그의 작업실(금릉도요)의 좁은 마당에는 그가 그의 식구들(그의 아내, 아들 이풍경 9세, 딸 이연잎 7세)과 함께 앞 바다도 보고, 밤이면 별빛도 달빛도 보는 땅에 착 달라붙은 야트막한 돌들이 둥글게 놓여 있다. 부자집의 정원에 있는 돌 탁자 셋트 모양, 그가 집 주변에서 주어온 야트막한 돌들로 탁자돌을 중심으로 의자돌을 그렇게 몇 개 둥글게 놓았다. 그는 그렇게 식구들과 함께 배 고프거나 배 부르거나 쭈그리고 앉아서 남도의 하늘빛과 풀빛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그 푸른 빛을 그릇에 배어들게 하고자 했다.



이영탄이 말했다. ‘고려 청자의 빛은 남도의 푸른 빛을 심은 것인데, 녹청 빛은 남도의 풀빛이요, 회청 빛은 남도의 바다 빛이요, 천청 빛은 남도의 하늘 빛이라. 오롯이 아로새기기가 보통 일이 아니요.’ 그 빛들을 배우기 위해서 그런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의 집은 앞으로는 밭과 도로를 건너 바다(강진만 구강포 근해)가 있고, 거기에 작은 섬(가우도)이 떠 있으며, 뒤로는 저두리 산이 있고 밭이 뺑 둘러져 있다.


그의 청자 그릇들이 놓여져 있는 방에는 뒷 산 쪽으로 난 창문이 있는데 창에 바로 풀잎들이 들어올 듯 가깝고 조금 높이 앉은 듯한 밭 너머로 산이 보인다. 바로 그 자리에 그의 푸른 그릇들이 놓여서 창문 너머의 푸른 산천과 하나가 된 모습은 전시장 불빛아래서 보아온 그릇들을 볼 때와는 너무도 다른 느낌을 주었다. 푸른 그릇들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푸른 산천이 만들어 내어 함께 친구가 되어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습, 바로 그 것이었다. 아름다웠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소박하고 겸손해서 차라리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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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탄에게 넌지시 물었다.
“고려 청자가 당신에게는 무엇이요?”
“하늘, 바다, 산 같은 것이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가만히 그의 그릇들을 들여다보니 정말 하늘, 바다, 산으로 되어 있다. 그 빛, 그 깊이, 그 울림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푸른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강진 사람들이 함께 있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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