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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前대통령서거] "DJ, 극단의 고통속 유머 잃지 않아"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머를 모르고는 그분의 전체를 알 수 없다" 며 생전의 유머를 공개했다.


동아일보 기자출신으로 김 전 대통령을 취재하기도 했던 이 의원은 "반평생을 테러· 체포· 납치· 투옥· 연금 ·사형선고 같은 극단의 고통 속에 사신 분이 어떻게 저리 태평하실까 싶을 정도였다" 며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삶을 사신 분이기에 같은 유머도 다르게 들렸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을 마치 남의 일처럼 얘기하곤 하셨다" 며 "김 전 대통령은 '재판장의 입에서 무기징역이 나올까, 사형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던 순간에 '무'하면 입이 나오고, '사'하면 입이 찢어집니다. 입이 나오면 내가 살고, 입이 찢어지면 나는 죽는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이 의원이 공개한 김 전 대통령의 유머스런 모습들.

▲야당 시절 DJ께서 기자 몇 명을 중국음식점에 초청하셨다. 식탁은 원탁이었다. 서열에 예민한 기자들은 각자 어디에 앉을지 망설였다. 중간서열 쯤 되는 기자가 “선생님을 마주 뵙기 위해 여기에 앉겠습니다.”라며 DJ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머지 좌석도 자연스레 정리됐다. 막내였던 나는 DJ의 옆 자리에 앉게 됐다. 그러자 DJ는 “그러게요, 마주 앉으면 이렇게 얼굴도 보고 좋은데…”하고 응수하셨다. 나는 “술집에서도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은 마주 앉지만,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DJ는 “이기자는 경험이 많은가 보지요?”하고 웃기셨다.


▲ DJ는 굉장한 대식가이셨다. 하루는 동교동에서 DJ와 함께 점심을 먹게 됐다. DJ 앞의 매운탕 그릇이 내 그릇보다 큰 것 같았다. 그런데 DJ께서는 한참 진지를 잡수시다가 당신 매운탕 속에 있던 생선 한 토막을 수저로 들어 내 그릇에 넣어주셨다. 나는 '잡수시기 전에 주시지…'하고 생각하면서도 시골 할아버지처럼 따뜻한 정을 느꼈다.


▲DJ 사면복권이 포함된 1987년 6·29선언 직전에 나는 DJ와 YS를 각각 독대했다. 두 분의 경쟁이 극도로 고조될 때였다. YS는 DJ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DJ는 YS에 대해 "그 분은 동고는 돼도 동락은 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설명하셨다. 역시 논리적이셨다.


▲야당 시절 DJ께 내가 "이것은 YS가 나보다 낫다, 싶은 것이 있습니까?"하고 여쭈었다. DJ의 대답이 무척 재미있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에 DJ는 며칠 동안 대책을 고민하셨다. 그리고 YS를 만나셨다. DJ는 YS께 "직선제 개헌 백만인 서명운동을 합시다."하고 제안하셨다. YS는 즉각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하셨다. DJ가 "아니, 우리 국민이 몇 명인데 천만명 서명을 받습니까?"하고 물으시자 YS는 "누가 세어보나?"하셨다. 그래서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게 됐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9선언이 나왔다. 서명자는 백만명이 안 됐다.


▲DJ께서 정계복귀 직후에 주부들이 주로 보는 TV프로그램에서 하신 유머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하루는 집사람이 면회 와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나는 집사람이 하나님께 '남편 살려 주세요'하고 기도할 줄 알았는데, 집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하는 거예요. 그때 나는 서운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신 DJ께서는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셨을 것이다. 그 분 특유의 싱거운 듯한 걸작 유머다.


▲평소 맹렬한 다독가이신 DJ께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시곤 했다. DJ는 "감옥에 한 번 더 가야할 모양"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양혁진 기자 y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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