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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

시계아이콘02분 28초 소요

‘경험의 힘’(웨이지엔리 지음, 남은숙 옮김)이라는 책을 읽다보면 폴과 퍼드 형제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들 형제는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힘들게 성장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이들은 어른이 되면 도시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 금의환향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폴은 부동산 개발업, 퍼드는 큰 술집을 경영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이들은 고향이 주는 포근함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낙향해서 편안히 노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두 형제의 얼굴에서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허름한 누더기 옷을 걸친 한 거지가 보였습니다. 형제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고마워하기는커녕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오랫동안 당신들을 기다려 왔소. 이제 당신들의 남은 생은 딱 3일뿐이오. 정확히 사흘 뒤 해가 서산으로 지면 징을 치며 나타날 것이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당신들은 이 세상을 떠난다오.”

거지의 말에 이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동안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제야 여유있게 노년을 보내려는데 남은 시간이 3일뿐이라니!”


형 폴은 밥도 안 먹히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번돈을 전부 침대위에 쌓아두고 한 장씩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죽을 텐데 이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이람?”


그는 돈을 다 써보기도 전에 죽는 것이 화가 나 돈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 죽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해가 서서히 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거지가 마침내 징을 들고 그의 집을 찾아왔고, 징소리와 함께 폴은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준비된 죽음이었습니다. 폴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퍼드는 달랐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도 굶어죽지 않고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다 고향 어른들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야. 이제 3일 밖에 못 사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떠나야겠어.”


퍼드는 생각을 당장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마을에 도로를 내고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거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그는 문밖에서 거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오기로 한 반대방향에서 마을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퍼드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간 거지도 징을 치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퍼드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베푼 잔치 덕분에 징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형제는 똑같이 죽음 앞두고 있었지만 한명은 죽고 다른 한명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글쎄.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입니다. 거지의 말 한마디, 징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기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긍정의 힘, 나눔과 실천의 에너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크기가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이를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보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시선을 멈추게 한 분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서전농원의 김병호 대표였습니다.


그는 전라북도 부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왔습니다. 밑천이라곤 76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무일푼으로 시골에 왔으니 그가 한 고생을 말로 표현할 길이 있겠습니까? 이쑤시개 1개를 8개로 잘라 사용하며 음료수 한잔 사먹는데도 인색할 만큼 자린고비였다고 합니다.


그런 그는 평생 모은 전 재산 300억원을 과학기술발전(KAIST)에 써 달라며 선뜻 기부했습니다. 그것도 평생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이처럼 많은 돈을 기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요.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을 들으며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들아, 네게는 줄 것이 없다”며 가족에겐 10원 한 장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다시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다시 불볕더위가 예고되고 있지만 휴가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휴가 잘 보내셨습니까? 휴가기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했습니까?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며칠 지나지 않으면 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수확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지루한 장마와 무더위 속 흐트러졌던 마음도 추스려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폴을 택하겠습니까? 동생 퍼드를 택하겠습니까? 김병호 대표처럼 번 돈을 잘 쓰는 예술가를 택하시겠습니까?


평범한 사람과 전사(戰士)간에는 확실한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전사는 모든 것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데 비해 평범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은총, 아니면 저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폴과 퍼드 형제, 김병호 대표를 떠올리며 도전적인 삶을 살되, 도전으로 얻은 열매는 은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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