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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의 골프파일] 퍼지 젤러의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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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의 골프파일] 퍼지 젤러의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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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역시 '멘탈게임'이다.

'US여자오픈 챔프' 지은희(23)는 13일 극적인 역전우승을 일궈낸 직후 "10번홀 더블보기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2, 4번홀에서 연거푸 보기를 범하면서 초반부터 고전하다 결국 더블보기라는 치명타를 얻어맞자 어쩔수 없이 마음을 비운 것이 더욱 강력한 멘탈로 이어진 셈이다.


지은희는 특히 미국으로 진출하기 직전인 2007년 국내 무대에서 무려 일곱차례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2위 징크스'에 눈물을 펑펑 쏟았던 선수다. 지은희는 그러나 이날은 마지막 72번째홀에서도 여유를 가졌다. 선두와 동타인 상황에서 5m가 넘는 까다로운 퍼팅을 마주 대하자 "붙여서 파만하자"고 욕심을 툭툭 털어냈고, 결과는 천금같은 우승버디로 이어졌다.

골프에서의 멘탈은 그래서 전략과 기량 모두를 아우르는 '사령탑'이나 다름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가진 프로선수라도 우승을 눈앞에 두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다. 레티프 구센은 실제 '메이저 중의 메이저' US오픈에서 불과 60㎝짜리 퍼팅을 놓쳐 다잡았던 우승을 날린 사례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강력한 멘탈은 아마추어골퍼들에게도 귀감이 될만 하다. 천하의 우즈라도 빅스타들이 즐비한 지구촌 골프계에서 매번 '역전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가는데는 확실히 이유가 있다. 바로 절체절명의 순간 반드시 필요한 샷을 연출해내는 '자신감'이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다.


우즈도 물론 초년병시절에는 경기가 안풀리면 클럽을 내던지며 예민한 반응을 일삼았다. 하지만 우즈는 연륜이 쌓여가면서 위기에 처할수록 느긋하게 '자신만의 플레이'에 몰두하고 있다. 우즈의 동반자들은 반면 스스로 조급해하며 자멸하는, 이른바 '우즈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타이거 효과'다.


아마추어골퍼 세계에서 멘탈은 프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똑같은 라운드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하루를 모두 망치기도 하고, 삶 전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엔돌핀'을 만들기도 한다. 화두는 단연 '무심(無心)타법'이다. 아마추어골퍼가 자신의 샷에 만족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될까. 시도하는 샷 마다 성공한다면 이미 아마추어골퍼가 아니다.


기자의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은 "버디 1개면 그날의 모든 샷이 용서된다"며 아웃오브바운스(OB)가 나도 껄껄거리며 지갑을 연다. 어떤 골퍼는 호쾌한 장타에 목숨을 걸고, 또 다른 골퍼는 되지도 않는 플롭 샷을 구사한다고 끙끙거린다. 늘 신선한 도전을 시도하고, 결과에는 초연하는 것. 이것이 아마추어골퍼의 권리다.


장마가 그치면 이제 곧 폭염속의 라운드가 다시 시작된다. 이번 여름에는 1m 짜리 퍼팅을 놓쳤다고 자학하지 말고 물소리와 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유를 가져보자. 미국의 백전노장 퍼지 젤러는 미스 샷이 나올 때마다 나지막이 휘파람을 분다고 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 어렵지만, 이것이 또한 우리가 골프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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