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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사소함과 대단함의 경계

시계아이콘02분 18초 소요

다큐멘터리란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사소한 소재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만 발굴되어 가공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충실한 일상이 훗날 대단한 사료로 선택될 수도 있고 하찮은 일지로 버림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추락중인 JAL기 좌석에 앉은 한 중년남자가 급히 메모지를 꺼내 그 순간을 기록했듯이 일본인의 기록습관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겨우 몇 명이 살아남고 대부분이 죽었던 사고기 안에서 홀로 공포를 이기고 볼펜을 꺼내 들었던 선택의지는, 그 후 9·11 테러현장에서 미국인들에 의해 재현됩니다.



공중납치 된 여객기가 백악관을 타깃으로 기수를 돌리고, 기내에서 일단의 승객들이 테러범들을 향해 몸을 던질 때, 휴대폰을 들고 가족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긴 승객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모두가 사라진 후 그들의 짧은 메시지를 근거로 영웅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울시가 2004년도에 우리 문화를 유럽에 알리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의 공원 안에 한국전통공원을 조성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책임자로부터 들은 경험담입니다. 어느 날 베를린 시내의 공원 담당자가 그에게 한국에서 온 직원들을 보고 느낀 특이한 점을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공원에는 서울공원을 만들기 전에 이미 중국정원과 일본정원을 건립했습니다. 그런데 공원의 특성도 각기 다르지만 전통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온 각 나라 관계자들의 행동이 너무 다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긴장한 서울시 책임자는 한국인들이 혹시 무슨 실수를 했는가 걱정되어 긴장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말을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온 분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차부터 끓여 마시고, 일본인들은 참배를 먼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국기를 게양하더니 경건한 표정으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한 후 일을 시작하는 게 참 인상적이더군요.”



그들은 한국인의 근면성과 시공의 정밀도에 놀라고, 특히 공사를 빨리 진행하는 것을 보고 더 놀랐다고 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직원들이 돼지머리 앞에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건 정말 다행이었죠. 나중에 태극기부터 꽂고 일을 시작 한 사람들을 확인 해 보니 한국 시공사 사장과 현장 소장임을 알게 되었고 귀국 후 표창을 받도록 했다고 합니다.



발주 받은 일을 주어진 기간에 열심히 한 것은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문화가 다른 외국인의 눈에는 ‘대단한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도 서울시 책임자가 만약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았다면 해외로 나간 한국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소박하고 애국적인 행동을 알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위를 살펴보면 각박한 현실이라고 해도 선양(宣揚)해야 할 사례는 넘쳐납니다. 우연히 부산의 <한국헬프클럽, 회장 신건호>이라는 한 모임이 35주년을 맞아 펴낸 소박한 기념소식지를 보게 됐습니다. 는 건강(Health). 경제(Economy), 사랑(Love), 열정(Passion)을 구호로 50여명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봉사친목단체였습니다.



의료단장인 박홍규 원장이 병원 사무실을 사무국으로 제공하고 책자발간은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초대 회장이 자비로 펴냈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17명으로 가장 많고 공무원과 교사, 화가, 전문직, 회사원, 자영업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분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년 봉사·자립·효행 3개 부문의 수상대상자를 추천받아 장학금을 전달하며 부산교도소 내의 독서대학을 위임받아 운영하고 독서를 통한 재소자들의 교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멀리 경남 함양군의 자매결연 마을까지 가 1박2일 원정의료봉사를 계속하며 그간 비회원으로 참가했던 의사들도 30여명이나 된답니다.



대부분 친목단체들이 세월 따라 점점 사라지는 것과 달리 명맥을 오래 유지하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가입은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도록 하고 반드시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야 되는 까다로운 조건도 불량(?)회원의 침투를 막을 수 있었던 한 요인이었습니다. 특히 가입심사를 할 때는 추천한 회원과 가입회원이 밖에서 함께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게 한 것도 그들만의 차별적인 관례가 돼버렸다고 합니다.



창립당시 30~40대였던 분들이 어언 60대 후반을 넘겼고 회원들의 반은 빠져나갔지만 많은 회원들이 새로 들어와서 할 일은 더 늘어났습니다. 35년 동안 가졌던 크고 작은 모임에서부터 작은 사건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세세하게 기록을 남긴 것은 초대 회장이 자청한 몫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소리 없이 봉사를 하고 남몰래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발굴하고 기록해 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익명의 행위가 돼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사연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사자들이야 밝히고 싶지 않다지만 누군가는 그걸 기록해 두는 것이 마땅합니다.



적은 인원과 조직으로 소리 없이 봉사해 어려운 이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봉사운동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행위라고 생각해 봅니다. 디지털시대에는 블로거들이 물어 나르는 작은 씨앗 한톨이 어디서 어떻게 싹을 틔워낼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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