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았습니다. 52초 분량의 이 영상은 서거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2일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씨 3명이 사저 내 정원을 둘러보고 나무를 가꾸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서거 당일인 23일 새벽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호관과 인사를 나눈 뒤 출발하는 장면부터 경호 차량이 바위에서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장면까지 담겨져 있습니다.
52초짜리 영상을 보면서 유독 시선을 뗄 수 없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봉화산으로 가는 도중 길가 화단 근처에 잠시 멈춰 앉아 풀을 뽑는 모습입니다. 방금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쓴 분이 길가 잡초에 관심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세상의 모든 것과 이별할 텐데 화단의 풀이 그다지도 소중했을까….
화면을 재생시켜 그 모습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이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옆에서 모셨던 문재인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자신도 추모열기의 근원(根源)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세상과 이별하는 길에서조차 화단의 풀을 뽑은 그 심성(心性)이 바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공존하고 있지만 진정성이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록 현실의 벽에 부딪쳐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국민들은 진정성에서 참 리더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은 있었지만 그의 철학과 행보에 일관성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무리수를 둔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도 나름대로 평가를 받는 건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리더에게 필요한 게 바로 진정성입니다. 국가도 회사도 가정도 진정성이 있어야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리더십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신 손욱 농심 회장은 “리더와 조직원간에 ‘말’ ‘뜻’ ‘마음’이 서로 교통해야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 ‘뜻’ ‘마음’이 교감을 나누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유능한 리더는 머리나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혹시나 리더로서 업적에만 신경 쓴다면 조직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조직원과 소통을 하고, 감동을 줘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참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위기상황에서는 하향온정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상황만 얘기하며 조직원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 위기극복 이후의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조직원이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과 작별 하러 가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화단의 풀을 뽑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자문(自問)해 보십시오. ‘나는 과연 진정성이 있는 리더인가’라고….
이코노믹리뷰 강혁 편집국장 kh@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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