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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장작불이 세면 고구마는 타버린다

시계아이콘02분 18초 소요

ⓐ “저 장지문을 보아라.”(障紙門·안방이나 사랑방 같은 큰 방이나 연이어 있는 방을 다양 하게 쓰기 위해 둘로 나눌 때 설치하는 문)



ⓑ “저 문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장지문은 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장지문처럼 성격이 곧아야 하는 것이야. 만약 장지문이 구부러져 있다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하하, 정말 웃기네요.”



ⓐ“이놈. 뭐가 그리 우스우냐?”



ⓑ“아버지, 저기 병풍을 보십시오.”



ⓐ“병풍이 왜?”



ⓑ“병풍은 몇 겹으로 접혀 있습니다. 구부러져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병풍이 구부러져 있지 않고 똑바로 만들어졌다면 당장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아들은 다시 말을 계속합니다.



ⓑ“장지문이 똑바로 설 수 있는 이유는 위아래에 홈이 패 있어서 거기에 자신의 몸 일부를 집어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지문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위와 아래에 있는 홈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는 일본 작가인 도몬 후유지가 쓴 ‘명장언행록(名將言行錄)’의 한 대목입니다. 에도성을 축성한 오타 도칸과 그의 아버지의 대화입니다. 이 작가는 일본 옛 사서를 근거로 명장 192명의 언행을 발췌해 도칸의 어린 시절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타 도칸. 그는 결국 일본의 전국시대 무장이 됐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영리했고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점을 자주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자주 대화를 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도칸이 어릴 적부터 모든 사물을 보는 혜안이 남달랐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장지문이 설 수 있는 이유. 당연히 곧기 때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도칸의 말처럼 위아래에 파인 홈에 자신의 몸 일부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합니다. 파인 홈에 자신을 의지하지 않아도 서 있을 수 있을까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에 의해, 스승에 의해, 동료에 의해 서 있습니다. 연예인은 팬의 성원에 의해,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라는 신발을 신고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병풍이 서 있는 이유.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곧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겹으로(더불어) 접혀 있기 때문이고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구부러져 있지 않고 똑바로 만들어졌다면 세워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곧으면 선다고 생각하고, 구부러지면 똑바로 서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겹으로 겹쳐져 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오타 도칸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마음속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적을 경영할 수 있었고 에도성을 창건, 역사 속 훌륭한 리더로 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6월의 정국이 어수선합니다. 조문정국이 끝나기 무섭게 여의도는 벌써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나라당에선 친이(親李) 소장파들의 반란, 당청 조각수준 개편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근거없는 말에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는 이상득 의원은 2선 퇴진을 전격 선언했고, 총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지도부는 쫓겨나듯 물러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민주당도 그렇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진상규명, 책임소재를 내세워 대여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서울대, 중앙대의 일부 교수들은 시국선언까지 한 상태입니다. 이래저래 6월은 정파, 정당 간의 팽팽한 대립으로 시끄러운 한 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민생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죠. 민생현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101년 역사를 자랑하던 GM이 파산하는 등 경제위기의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니 국민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골프선수 최경주씨가 이에 대한 신선한 해답을 다시 줬군요. 600년 전 오타 도칸이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옮겨봅니다.



“지금껏 골프를 하면서 결코 나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 주위엔 팬들의 성원이 있었고,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부는 내게 또 다른 충전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 더 도전적이 되고, 더 강해집니다. 선수는 겸손하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선수만 그렇겠습니까? 지지율을 생명처럼 여기는 정치인의 세계는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도칸과 그의 아버지의 대화, 최경주 선수의 겸손한 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여의도의 정치인들을 보고 싶습니다.



장작불이 너무 세면 정작 고구마는 익지 않고 타버리더군요. 자신들이 서 있는 무대를 대립과 갈등으로 달구기만 하면 결국은 스스로 타 버리고 마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구경꾼(민심)이 떠난 뒤의 무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nomy.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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