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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명장에 길을 묻다

<1>금은세공 이임춘 명장

경제 위기의 짙은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원도 드넓은 영토도 없다. 오로지 우리 상품으로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주변에는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돈과 명예가 없어도 명품을 만들어가는 장인들이 많다. 장인들은 우리의 자산이다. 또한 우리의 정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바친 노고와 인생을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되돌아본다.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인정신이 절실하다. 장인의 땀으로 빚은 명품들은 시대를 초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 남아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기게 된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장인정신, 그들의 땀과 혼을 다 찾을 때다.

'느림의 미학, 정성의 미학'으로 만든 장인들의 명품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혼(魂)을 전하는 것과 같다. 묵묵히 인생을 바치는 장인들을 통해 명품의 진정한 의미, 땀의 가치, 위기의 해법을 구해본다.

이에 아시아경제는 패션에서 제조업, 유통, IT, 건설,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에 숨은 명장들을 찾아나섰다.


이임춘 귀금속 공예 명장(57)은 현재 주얼리 산업화에 큰 기여를 한 왁스기법에 장인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홍콩주얼리 디자인 공모전 전문가부문에서 입상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40여년 귀금속 공예를 해온 이 명장은 자신의 기술을 배우러 온 후진들에게 기술을 배우지 말라고 충고한다. "한국에서 기능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명장들의 기능은 후진에게 전수되지 않으면 맥이 끊긴다. 다시 되살릴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 명장은 창조의 고통보다 명장의 삶이 더 고난하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자으마한 공예방을 준비하고 있다. 이임춘 명장에게서 이 시대의 명장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차가운 금속에 혼불어넣기 40년
그의 손끝에서 꽃으로 피고...


"탕 탕 탕" 1mm의 두께를 가진 정을 매끈한 금속 표면 위에 세우고 망치로 수만번 두드리자 학이 고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은사(銀絲)를 철판 위에 심어 꽃을 피우고, 잎맥을 만든다. 이런 진통 끝에 명장의 작품이 완성된다.

1998년 금은세공 분야에서 명장의 칭호를 받은 이임춘(57)명장은 올해로 42년째 귀금속을 다루고 있다. 금과 은의 미세한 차이를 감각으로 구분해 종이처럼 얇고 세밀하게 다듬어 무늬를 세공한다. 그는 전통기법인 상감기법 입사 부문에서 국내 최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왁스(wax)를 사용해 장신구를 만드는 기법을 처음으로 적용, 주얼리의 산업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을 모티브로 한다. 금과 은으로 만든 꽃잎에 진주로 암술을 심고 다이아몬드로 꽃의 수술을 만든다.

진주, 사파이어 등 100% 천연석을 사용해서 만든 이 브로치는 금과 은을 얇게 펴는 고난이도의 기술이 더해져 일반 제품보다 훨씬 가볍다. 브로치로 착용이 가능하도록 최대한의 무게를 줄였기 때문이다.

이 명장은 또 왁스기법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로 왁스 기법에 대한 실용 서적을 내기도 했다. 왁스 기법이란 촛농과 비슷한 왁스를 사용해 만든 모형으로 틀을 제작한뒤 일종의 주조 방식으로 반지나 장신구 등을 만드는 기법이다. 직접 금속을 다루는 것보다 세밀한 표현이 쉽다는 점과 제작 시간이 단축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이 왁스 기법으로 영화 용가리 캐릭터를 제작했다. 이 방식을 통해 주얼리 제품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됐고, 라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는 "왁스 기법으로 자연 속에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며 "왁스기법은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명장은 한국귀금속보석디자인협회 초대 회원이자 현재 국제쥬얼리디자인 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귀금속 명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제작 의뢰가 들어오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재 종로에 귀금속 전문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그가 처음으로 귀금속을 접했을 때만 해도 종로에는 귀금속 상가들이 많지 않았다. 종로 귀금속 상가의 산증인이자 토박이인 셈이다.

그는 "나 자신이 만든 작품에 만족하기 위해 다음 작품을 만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을 때 항상 아쉬운 점이 남아 또다시 다음 작품을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일을 산에 오르는 일과 같다고 표현했다. 산에 오르기는 힘들어도 정상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또다시 산에 오르게 한다는 것.

상감기법 입사부문 국내 최고
고가.대량생산 어려워 '외면'
수작업 땀의가치 인정받기를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장인정신이라고 이 명장은 강조한다. 이 명장은 "몇몇 귀금속 업체에서 어렵게 창조하기 보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껴 쓰거나 대충 대충 물건을 만들고 있다"며 "제품의 질이 나빠질 수 밖에 없다보니 어느 누가 그런 물건을 쓰겠느냐"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내 귀금속 전문가들이 국제대회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수 백 년을 이어온 전통공예의 맥이 끊기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기능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인 풍토와 정부의 부족한 지원 등이 전통 공예의 맥을 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땀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험난하고 어려운 기능인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전통 공예의 맥이 전승되지 못하고 있고, 일반 소비자들은 해외 명품만 찾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종로 3,4가를 귀금속 산업 뉴타운으로 지정했다. 종로에 위치한 많은 귀금속 관련 중소업체를 한자리에 모아서 특화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소식에도 이 명장은 전혀 반갑지 않다.

그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특구인지 모르겠다"면서 "기능인에 대한 지원 정책은 세우지도 않고 보여주기 위한 식의 행정"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장인의 작품을 인정하지 못하는 세태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대량 생산이 어렵고 가격이 비싸다는 점 때문에 백화점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해외 명품은 가득 진열 판매하고 있지만 국내 장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며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 명장의 작품은 손으로 직접 모든 것을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그는 결코 금액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개월 내외다. 하루 일당을 최소 5만원이라고 한다면 재료비를 빼더라도 약 500만원이 된다.

현재 그는 기술 전수를 멈춘 상태다. 대신 경기도 양평에 작은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적은 수라도 귀금속 공예를 꼭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만 기술을 전수해줄 계획이다.

"기능인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지만 전통공예의 맥은 결코 끊겨서는 안됩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수백년 모진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에 지키고 있는 고목의 모습이 아름답듯, 흔들림없이 오직 한길을 좇는 그의 장인 정신에 숙연함까지 느껴진다.

◆이임춘 명장은
△1991 다이아몬드 투데이 공모전 최우수상 △1992 한국귀금속보석디자인협회 발족 △1995 국제귀금속학원(현 국제쥬얼리디자인) 설립 △1997 장신구공예왁스기법 발간 △1998 귀금속공예명장 선정 △2001 이태리 로마 문화전시관 한국명장전 출품 △2002 일본 동경 국제전시장 한국명장전 출품 △2001 2006 2008 대한민국 명장 박람회 출품 △홍콩주얼리 디자인 공모전 전문가부문 입상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귀금속공예 기능경기대회 출전선수 기술지도 △대통령표창 노동부장관상 등 다수 수상 △현 국제쥬얼리디자인 대표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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