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2008년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가 24일 일본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19일 녹화해 24일 방영된 일본 후지테레비의 '신보도(新報道) 2001'에 나와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일본 재무·금융·경제 재정상과 대담을 갖고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재정 지출에 대해 토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국민 1인당 1만2000엔씩, 총 2조엔을 지출한 정액급부금에 대해 "빵점짜리 대책"이라고 지적하는 등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정액급부금은 다른 나라에서 실패한 사례"라며 "미국의 경우를 들어볼 때 역사적으로 급부금은 소비되지 않고 거의 저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또 에너지절약형 가전제품 구입시 가격의 10%를 적립해 주는 '에코포인트제도'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이 포인트를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포인트만 지급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평가를 아예 사양했다.
난색을 표한 요사노 재무상은 15조엔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언급하며 "어차피 재정을 사용할 거라면 국민들이 놀랄 만큼의 액수를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통해 "당분간 시련의 시기가 계속되겠지만 내년 봄에는 일본 경제가 성장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는 "좀 더 적극성이 필요하다"며 막대한 규모의 경기부양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일본의 경기 회복 시기에 대해 "환자(일본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고는 생각하지만 언제 퇴원(회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며 "5년, 혹은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을 흐렸다.
과거,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에 대한 정부와 일본은행의 늑장대응을 강하게 비판해 온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달 공식 석상에서 이에 대해 사죄의 뜻을 전한 바 있다. 그는 "서구의 전문가들은 과거 일본이 대응이 늦은데다 근본적 해결을 회피했다고 비판해왔지만 비슷한 경우에 직면하면 우리도 같은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다"며 자성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근에는 지난 15, 16 양일간 대만 타이베이 시에서 가진 국제 경제위기에 관한 회의에서 기조 연설을 통해 "세계적 경제 위기를 계기로 대만 기업들이 일본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19일에는 한국경제TV 주최로 열린 '세계경제 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해 "세계 경제가 1990년대 일본처럼 잃어버린 5년, 10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는 등 활발한 강연에 나서고 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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