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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금융 해부]②월가 "덩치보다 내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융업은 실패한 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금융업은 자본을 기업과 소비자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해 실물경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누구든 원하는 이들에게 신용을 남발했다. 금융업회사는 장단기 여신을 운용하는 데 고도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발휘,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금융업은 혈관이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공급하듯 경제 전반에 신용을 공급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지만 실상 칸막이를 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시스템의 실패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뼈아픈 학습효과로 인해 금융업계가 어떻게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조망해 본다.】

짧게는 위기 이전까지 10년, 길게는 대공황 이후 금융권이 누렸던 황금기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가려져 있었다. 금융권은 낮은 비용으로 신용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외형 확장과 수익 창출할 수 있었던 것.

위기 이전까지 은행은 자산을 늘려 외형을 확장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거대한 공룡으로 몸집을 불리는 데 큰 비용이 들지도 않았고, 업체간 경쟁도 외형 확대를 부채질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 상황은 급반전했다.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에만 시선을 고정했던 금융회사는 이제 부채로 관심을 돌렸고, 자산건전성이라는 문제에 강하게 결박당하는 꼴이 됐다.

◆ 시장의 잣대가 바뀐다 = 금융업계의 변화는 비단 정부의 규제 때문만이 아니다. 시장의 질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엄격해졌을 뿐 아니라 평가의 잣대도 위기 이전과는 다르다.

채권 투자자들은 잠재적인 손실 위험에 대해 충분한 자본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주 역시 자기자본이익률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은 충분한 자본을 확보할 때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은 2000~2007년 사이에는 은행주의 자본-자산비율과 주가수익률에 큰 상관관계가 없었지만 최근들어 두 가지 지표가 크게 연동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은 자본 규모뿐 아니라 종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주식 파생상품을 포함한 보통주 이외의 자본에 대해서는 가치를 깎아내리는 움직임이다. 보통주가 아닌 다른 형태의 자본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충분한 완충 역할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

미국의 은행이 유럽 은행에 비해 수치로 드러나는 자본적정성이 우량하지만 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유도 자본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이 하이브리드 채권을 싼값에 되사들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 특히 위기가 부상한 후 부실 자산 상각으로 인해 전체 자본에서 보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자본 구성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졌다.

◆ 새로운 '돈줄' 찾아라 = 금융회사가 과거와 같이 저비용으로 몸집을 불리는 일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시장의 잣대가 엄격해지면서 비용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를 겪은 투자자들은 채권이나 주식에 대해 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고, 자본 희소성도 높아졌다.

크레딧 스위스(CS)의 투자은행 부문 대표인 폴 칼레오 "과거 은행들은 자산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본 희소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산 운용의 효율성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고객의 투자자금이 아닌 금융회사 고유계정을 운용해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자기매매 사업 부문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를 찾는 일도 금융권이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다. 위기 이전 금융회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을 부외계정으로 운용했다. 머니마켓펀드를 포함한 투자 상품이 단기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포함한 구조화 증권을 매입, 은행권에 자금줄을 댔으나 신용경색으로 유동성이 위축됐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는 장기 채권 발행을 늘리거나 예금 의존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수신을 통한 자금조달 역시 최선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뱅크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예금 자산이 급속하게 빠져나갈 수도 있고, 자본 조달 창구와 만기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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