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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금융 해부]① 꺼져가는 신용팽창 엔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융업은 실패한 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금융업은 자본을 기업과 소비자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해 실물경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누구든 원하는 이들에게 신용을 남발했다. 금융업회사는 장단기 여신을 운용하는 데 고도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발휘,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금융업은 혈관이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공급하듯 경제 전반에 신용을 공급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지만 실상 칸막이를 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시스템의 실패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뼈아픈 학습효과로 인해 금융업계가 어떻게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조망해 본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주요 유동성 공급원은 이른바 '논뱅크' 금융회사였다. 저금리와 레버리지가 어울어지면서 머니마켓펀드와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 '그림자 금융'이 돈줄이 된 것. 이들은 여러 대출 채권을 묶어 구조화 증권상품을 찍어내는 형태로 유동성을 창출했다.

씨티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1993년 이후 전통적인 형태의 은행이 미국에서 창출한 여신 규모는 전체 여신의 20%에 불과했다. 증권화를 통해 창출된 유동성은 전세계적으로 8조7000억 달러에 달하며, 특히 2007년 말 현재 신용카드와 대학 학자금 대출에서 발생한 유동성의 절반 이상은 구조화 증권상품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장기간 글로벌 신용팽창의 핵심 엔진이었던 '그림자 금융'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잘못된 관행과 상품에 대한 허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 구조화 금융상품 발행이 소강상태를 맞으면서 은행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모럴 헤저드에 '메스' = 신용위기의 근저에는 구조적인 경기 하강뿐 아니라 모럴 헤저드가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구조화 증권을 발행하는 금융회사가 담보물에 대한 가치 평가와 잠재적인 디폴트 위험을 엄격하게 평가하지 않았던 것. 상품에 내재된 리스크는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발행사의 모럴 헤저드가 팽배했고, 이는 신용위기를 부채질한 셈이 됐다.

이 때문에 담보물의 가치 평가를 엄격하게 하는 제도적 틀을 도입하는 한편 발행자가 디폴트에 대한 손실을 일차적으로 떠안게 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또 모든 투자자산을 대차대조표에 투명하게 반영하게 함으로써 금융회사가 잠재적인 손실에 대해 충분한 자본을 확충하도록 하고, 상품 구조를 단순화하는 과정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체케티는 "디폴트 위험을 가늠할 수 없는 자산을 증권화한 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예상되는 디폴트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대출 금액을 담보가치보다 작게 하면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럴 헤저드를 일으킨 또 하나의 세력은 다름아닌 신용평가사였다. 구조화 증권에 대해 본질가치보다 후한 점수를 부여, 신용위기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헤지펀드의 대가 조지 소로스는 신용평가사가 구조화 증권에 대해 A등급을 남발, 시장에 A등급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등 유력 신용평가사에 유리한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위기의 주범인 신용평가사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신용평가사가 앞으로 구조화 증권상품에 대해 AAA 등급을 부여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 투자-발행 수요 동반 감소 = 구조화를 통해 리스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위기를 통해 입증됐다. 오히려 구조화라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확대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조슈아 코발과 프린스턴 대학의 야콥 주렉은 "다수의 대출 채권을 통합한 후 일정 기준에 따라 트렌치로 나눈 구조화 금융상품이 오히려 리스크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특히 경기 하강과 같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해 아무런 보호장치를 제공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기사이클이 하강하면서 구조화 증권의 손실 리스크가 더 높아졌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구조화 증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구조화 증권을 매입하는 투자자에 대한 규제가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를 포함해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경우 구조화 상품 선호도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투자 수요뿐 아니라 발행 수요도 동반 감소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정부가 뿌리부터 흔드는 규제 방안을 도입하고, 이에 따라 구조화 증권의 시장 규모가 크게 위축되더라도 모든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말끔하게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앞으로 수 년 동안 리스크 해소는 금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경제 전문가와 업계 애널리스트는 경기 후퇴를 심화시킬 수 있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부채축소)'의 기간과 규모는 수요 위축의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용어설명 :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이란 지난해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를 포함한 IB와 여기서 가공한 구조화 증권 상품을 이른다. 이들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상품 발행에 따른 수익을 챙기면서 리스크를 투자자들에게 떠넘겼으며, 신용을 남발해 거품 경제를 초래했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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