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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거절의 기술’

시계아이콘02분 26초 소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사장이 대출받기위해 제2금융권을 찾았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사정이 다급해 이리저리 줄을 대고 한번쯤 얼굴을 익힌 제2금융권 대표와 면담했으나 자금 확보는 용의치 않았습니다. 대표를 소개하겠다며 함께 간 친구가 더욱 당황했으나 오히려 그 사장은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답니다. 거절당했는데도 무안하지도, 언짢지도 않고 조금은 무겁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이 부탁을 거절당하고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금융사 대표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금융사 대표는 중소기업의 사정을 상세히 듣고 함께 온 친구의 이야기도 경청한 후 자신 회사의 기준과 운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축약하면 요즈음 대출에 관한 우려가 높아지고 아직 회수하지 못한 대출도 많은 실정에서 회사 나름대로 기준을 정했답니다. 이럴 경우는 어떻게, 저런 때는 어떻게, 나름대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충실히 자금을 운영하고 모든 직원들에게 이를 따라 줄 것을 당부했는데 대표가 먼저 기준을 파기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중소기업 사장은 다시 급해졌지만 금융사의 기준과 운영원칙이 깨어지는 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자신도 그리 원치 않는 일이었습니다. 꾸밈없고 확실한 명분이 있는 거절은 상대방의 마음을 누그러뜨립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딸이자 4남매의 엄마, NBC방송의 인기 앵커,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는 쿠바 대통령과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 일자가 하필 딸의 유치원 입학식과 겹쳤습니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는 딸의 입학식을 안갈 수도 없고 어렵게 성사된 쿠바 대통령과의 인터뷰도 포기할 수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앵커로서의 경력에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과감히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그 날은 곤란해요. 딸의 유치원 입학식이 있는 날이거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의 그런 당당함은 대통령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기는커녕 오히려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구하는 지름길이 됐다. 결국 인터뷰 일자가 토요일로 바뀌었고 그는 아이의 입학식과 인터뷰, 원하는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었다”


이미지 설계 전문가 이종선씨는 저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힘-따뜻한 카리스마>에서 슈라이버가 이렇게 일과 가정에 대해 조화롭고 지혜로운 균형을 가졌던 비결은 바로 ‘솔직한 거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역시 여자란 사소한 집안 일 때문에 일을 망치는군’하며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자녀의 행사에 부모가 다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서양의 경우에는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이다. 지나치게 사회적인 야망에 치우치는 것도, 그 반대로 소심하게 사소한 개인사에만 급급 하는 것도 아닌 ‘소신 있는 거절’은 매우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는 살다보면 주변인들의 많은 부탁을 받고 자신도 누구에겐가 부탁을 합니다. 내가 거절할 수도, 내가 거절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그러나 거절은 대가를 수반할 때가 많습니다. 위에서처럼 거절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거절은 자칫 관계를 서먹하게 만듭니다. 특히 잘 아는 사이일수록 고민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그러나 거절에도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거절 후에도 상대방과 원활한 관계를 바란다면 자신의 이익과 편의보다는 공공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이유로 거절하도록 노력해야 한답니다.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 입각한 설명으로 상대방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라는 것입니다. 또 특별한 명분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자신의 사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를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또 만나기에 한번의 부탁과 거절로 이제껏 다져 온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부탁을 거절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여성들은 천성적으로 남을 도와주고 싶고 착한 일을 하고 싶은 인자 때문에 수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절함만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무리하다 생각하면 긴 해명과 배려 없이 단호하게 끊을 필요도 있습니다. 우유부단하게 시간을 끌어봤자 잘못된 메시지만 주고 일을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들을 위해 우아하고 야무진 거절법을 제시했다는 <현명한 그녀는 거절법도 다르다>에서는 모두 ‘예스’한다고 해서 당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거절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모두가 어려운 시기, 누구나 곤경에 빠지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서로 보듬고 격려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오해하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지 ‘거절의 기술’을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거절 그 자체보다 거절 방법에 더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진정과 공감이 담겨있는 거절은 서로의 상처를 많이 줄여줄 것입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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