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인공지능(AI) 수요로 메모리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세계 최대 전자제품 기업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애플은 이전부터 동종 업계 기업들을 일부러 경쟁시켜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이른바 '마진 쥐어짜기' 전략을 구사해 온 기업입니다. 중국산 메모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의 대항마로 부상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연합뉴스
반도체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26일(현지시간) IT 전문 매체 wccf테크 보도를 인용해 "애플이 중국산 D램(DRAM) 공급업체를 염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상반기까지 사용할 D램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DD)만 확보했습니다. 추가 물량은 공급 업체들과의 가격 협상을 통해 구매해야 하는데, 이미 메모리 가격은 AI발 수요 급증 때문에 폭등한 상황입니다.
중국에는 낸드플래시 전문 업체 YMTC, D램 전문 업체 CXMT라는 두 메모리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기술 제재로 최첨단 EUV 노광장비를 공급받지 못해 선단 메모리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최신 세대인 DDR5 D램 수율을 80%까지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기준 5%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지요.
애플은 중국산 메모리를 가격 협상 지렛대로 키울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 칩 위탁생산부터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일부러 동종 업계 공급망 기업 여러 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 가격 경쟁을 유발하는 건 애플의 유구한 사업 전략이었습니다.
애플은 동종 공급망 업체 여러 곳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가격 경쟁을 유발하는 사업 전략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IT 자문 기업 '가트너'가 분석한 애플 공급망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주요 공급업체와 다수의 독점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선불금으로 유리한 가격 조건을 협상하면서도 대량 생산을 보장"합니다. 또 "동일한 부품에 대해 여러 공급업체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공급망 차질을 지연하며, 총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 여러 공급업체가 경쟁해 공급 비용을 낮추게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지요.
실제 애플은 공급망 관리 역량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합니다. 현재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팀 쿡도 애초 공급망 전문가였습니다. 더불어 공급 업체에 부품 제작을 맡기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애플은 품질 관리와 생산 공법에 막대한 투자를 합니다. 예를 들어 애플에 납품되는 디스플레이는 모두 애플이 제시한 품질 기준에 따라 제작되며, 사용 장비부터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애플 엔지니어들의 세세한 요구 사항을 맞춰야 합니다. 즉, 만일 애플이 중국산 메모리 업체와 협력할 경우 그동안 애플이 축적한 품질 유지·생산 안정화 노하우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요.
중국 메모리 기업 CXMT의 DDR D램. CXMT 홈페이지
다만 애플이 곧장 중국산 메모리 부품을 다음 아이폰에 탑재할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비록 중국 메모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삼전·SK하이닉스의 70%대 점유율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양산 기술 문제도 있습니다. CXMT는 이제 막 16나노미터(㎚)대 D램을 상용화했는데, 해당 노드는 삼전, 하이닉스가 이미 수년 전부터 생산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중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핵심 기업인 애플이 중국산 반도체를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습니다. 트렌드포스는 "핵심은 애플의 협상력이 메모리 가격 상승 추세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냐는 것"이라며 "또한 애플의 전략이 성공하면, 다른 주요 기업들도 중국산 메모리로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