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기자
김보경기자
"교육개혁은 초·중등 교실에서만 변화를 꾀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입과 고등교육까지 연계해야 전체적인 틀을 짤 수가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2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교실 혁신과 입시 구조, 대학 교육이 따로 움직이는 한 교육의 본질적 변화는 어렵다며 '초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 이르는 교육 대전환을 강조했다. 교육청 단위에서 제아무리 창의적 인재를 강조하며 초중고 혁신 교육을 이끌어와도 '오지선다' 문제풀이 수능 앞에서 결국 맥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교육청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2033년 서·논술형 평가 및 수능·내신 절대평가 확대, 2040년 수능 폐지' 구상을 공개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현재의 낡은 교육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는데, 최대 걸림돌이 바로 '수능'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현 대입제도는 손봐야 한다고 봤다. 대학별 '특성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려면 각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하지만, 변별력 중심의 수능 체제에서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절대평가와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를 축으로 한 '단계적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교육 현장의 변화가 대입과 대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감과 대학 총장 간 협의체 구성' 필요성도 강조했다. 정 교육감은 "지금까지는 유·초등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과 대학 총장들 간의 협의 기구가 없었다"며 "교육 변화를 유기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교육청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2040학년도 수능 폐지'를 꺼낸 배경이 무엇인가.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고 AI·디지털 대전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오지선다형 상대평가 중심의 과열 경쟁을 그대로 두는 건 학생에게도 사회에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2040년 무렵엔 대학 진학 대상 학생 수가 지금 정원 기준과 비교해 25만4000명 정도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경쟁 교육을 유발하는 지금의 입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또 AI 시대에는 정답을 빨리 고르는 능력보다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고 근거를 세우고 협력하고 말과 글로 설득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현 평가와 대입 체제는 그런 역량을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
'수능 폐지'는 이러한 흐름서 충분한 기간을 두고 대비하자는 차원서 낸 장기 로드맵이다. 그 과정에서 내신 평가도, 대학 선발도 함께 맞물려 바뀌어야 한다. 서·논술형 확대나 절대평가 논의도 같은 취지다.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부 논의와도 연계해 데이터와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도록 적극 협력하겠다.
-2032학년도가 아니라 2033학년도에 '절대평가, 서·논술형 확대'를 주장한 이유가 있나.
▲지금 초등학생들이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대입의 큰 방향을 미리 정하고, 학교가 그 변화에 맞춰 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고와 안정적인 이행 기간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안한 2033년은 대입 제도 개선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개정과 함께 실제로 작동하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고등학교 생활을 이해하고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중학교 3학년 2학기 진로 학기 운영이 자리 잡아야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연계 학기'의 내실화를 위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 개정, 서·논술형 및 절대평가의 현장 안착, 그리고 AI 채점 시스템 안정화까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학교가 혼란 없이 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점으로 2033학년도 대입을 제안했다.
-AI 기반 서·논술형 채점 시스템인 '채움아이'를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해 66개 학교에서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를 해봤는데 교사가 평가한 것과 AI가 평가한 것의 일치도가 높았다. 신뢰도는 0.8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채점에서 교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조하는 도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자료가 축적되면 객관성과 공정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채움아이는 올해 120개교로 확대 운영되며 2027년에는 서울 전역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평가'만 바꾼다고 창의적 인재가 저절로 길러지지는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평가는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한 논의 없이 독자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교육과정·수업·평가'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평가를 바꾸자는 논의는 결국 교육과정과 수업을 함께 바꾸자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평가 개선은 '수업의 변화'를 기본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토의·토론, 프로젝트, 탐구 수업 등 역량 중심 수업을 확산하면서 수업과 연계한 서·논술형 평가 체제로의 단계적 전환을 추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AI 서·논술형 평가지원시스템을 도입하고, 실습 중심의 서·논술형평가 연수 등을 진행하려고 한다. 또한,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 외에도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방향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독서 교육'도 강조하려고 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교육청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대학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함께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결을 넘어 교육철학과 방향의 연대가 필요하다. 초·중등 단계에서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 혁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은 대입 중심으로 수렴된다. 결국 고등학교 교육은 입시에 맞춰질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율성과 다양성보다는 점수 경쟁 속에 내몰리게 된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초·중등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감과 대학 총장 간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과 대학이 따로 가면 안 된다. 대학도 미래 역량 기반 교육 방향에 맞춰 학생 선발과 교육을 바꿔야 한다. 대학이 획일적으로 뽑지 말고, 특성을 살려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강조하고 싶은 정책은.
▲교육공동체와 시민이 '교육 전환'을 체감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3대 서울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지식 이해 중심 교육'에서 '역량 기반 교육'으로 전환하고, 정책 실행 과정을 '하향식(Top-down)'에서 '상향식(Bottom-up)'으로 바꾸겠다. 현장에서 이미 실현되고 검증된 정책을 신속히 도입·공유해 학교의 행정적·교육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려고 한다. 끝으로, 학생 성장을 중심에 두고 파트너십에 기반한 동반자적 거버넌스로 전환하겠다. 학생·학부모·교사가 정책의 동반자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고, 주요 교육정책은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확장하며 합의에 기반한 추진을 강화하겠다. 서울에서 검증된 정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서울 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을 선도하는 공교육 모델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종로구 교육청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