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연인'이었다'…2030 울린 뒤늦은 사과[슬레이트]

찌질해서 도망쳤던 우리들의 자화상
재결합 판타지보다 어려운 '좋은 이별'
실패한 사랑도 인생의 '스펙'임을 증명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 컷

세상에 '좋은 이별'이란 게 존재할까. 대부분의 실패한 연애는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고, 씻지 못할 생채기를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사랑했던 기억은 증발하고, 마지막 순간의 독설과 비참함만이 앙금처럼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지난 사랑 앞에서 죄인이다.

배우 구교환과 문가영이 주연한 영화 '만약에 우리'가 할리우드 대작(아바타: 불과 재)을 꺾고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하는 기현상 뒤에는 이 거대한 정서적 부채감이 자리한다.

영화는 가난 때문에 사랑조차 사치였던 청춘의 비루한 현실을 그린다. 하지만 정작 관객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지점은 따로 있다. 10년 만에 재회한 두 남녀가 덤덤하게, 그러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네는 안부 인사다. 스크린 밖 관객들이 그토록 하고 싶었으나 차마 하지 못했던, 지난 사랑을 향한 뒤늦은 사과이자 고백이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 컷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의 이별은 우리네 그것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거창한 비극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자격지심을 들키기 싫어 상대를 밀어내고 도망쳤을 뿐이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헤어지자"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끊긴다.

현실이었다면 그것으로 끝이었을 테다. 대개는 비루한 침묵이나 일방적 차단, 혹은 씻을 수 없는 악담을 남긴 채 단절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는 10년이라는 시차를 건너 이들을 다시 한 테이블에 마주 앉힌다.

사실적이던 서사가 판타지 영역으로 도약하는 변곡점이다. 재벌 2세와의 결혼 같은 진부한 동화로 흐르진 않는다. 오직 서로의 치기 어린 과거를 용서하고 온전한 마침표를 찍는 데 방점이 찍힌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너는 나에게 과분했다"는 성찰, 그리고 "나를 견뎌줘서 고마웠다"는 감사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고백은 미숙했던 시절의 나를 용서하고 상대에게 뒤늦은 축복을 건네는 해원(解?)의 의식으로 확장된다. 현실에선 난망하기에, 지난 사랑에 빚진 마음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강력한 심리적 위안이 된다. 서로를 갉아먹던 파국의 기억이, 비로소 내 인생을 지탱했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복권된다. 그렇기에 '만약에 우리'라는 제목은 질척이는 가정법이 아니라, '이제는 너를 온전히 보내줄 수 있다'는 성숙한 작별 선언으로 읽혀야 한다.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 컷

이 온전한 매듭은 묵직한 위로도 건넨다. 실패한 연애가 곧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오히려 그 아프고 치기 어렸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으며, 그 불완전한 조각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다독인다.

결국 김도영 감독은 로맨스라는 외피를 빌려 인간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비추어 보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다. 10년 전 연인에게 건네는 "고마웠다"는 뒤늦은 인사는, 사실 그 모진 시절을 견뎌낸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화해의 악수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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