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스피 5000 앞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은

국민연금이 이례적으로 1월 말 기금운용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포트폴리오 점검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국내주식 보유비중 한도를 상향하는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이미 18%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세운 올해 국내주식 보유 비중 목표치 14.4%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현행 기준을 유지할 경우, 향후 지수 변동에 따라 국민연금이 기계적으로 주식을 매도하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왜 지금인가'다. 기금운용위원회는 통상 정기적으로 개최되면서 운용 상황을 점검해왔다. 이번에는 예상보다 빠른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시점이 묘하다. 코스피는 4900을 넘기면서 정부가 연일 강조한 '코스피 5000'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연금의 법적·제도적 역할은 분명하다. 국민 노후자금의 장기적·안정적 수익률 확보다. 이를 위해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시장 중립성은 지켜야 할 핵심 원칙이다. 지수를 지탱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주요 책무가 아니다. 물론 비중 한도에 걸려 발생하는 기계적인 매도로 시장 가격 형성이 왜곡되는 일을 사전에 막겠다는 조치로 본다면, 국민연금이 시장 중립성을 위해 움직였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전술적·전략적 자산배분을 활용하면 국내 주식 비중은 산술적으로 19%대까지 늘릴 수 있다. 리밸런싱 속도를 조절하고 분할 집행하면서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기술적 선택지도 존재한다.

이번 행보로 시장과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다음 지수 하락 국면에서도, 다음 정부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길 때도, '기계적 매도 방지'라는 명분은 늘 재활용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번지고 선례가 쌓일수록 국민연금은 수익률과 함께 신뢰도 잃는다.

이미 해외 자금의 시선은 한국 증시와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건강한 코스피 5000을 달성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은 따로 있다. 어차피 국민연금은 한국 증시가 담기에는 지나치게 큰 고래다. 개별 투자자로서 직접 시장 가격에 개입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후진적인 지배구조, 부족한 주주환원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방파제가 되는 것이 국민연금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는 역할이다.

기업의 체질이 개선되면 해외에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키우고 투자할 유인이 생길 것이다. 결국 지수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 따라온다. 국민연금이 지켜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원칙이다.

증권자본시장부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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