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세계 첫 청소년 'SNS 셧다운' 실시…전세계 확산 조짐[시사쇼]

유해 콘텐츠서 청소년 보호 목적
호주 청소년들 반발…헌법소원 청구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호주 정부가 10일부터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SNS에 노출되면서 발생한 각종 사회문제, 특히 온라인상에서의 인신공격과 괴롭힘 문제를 막기 위한 극약처방이다. 이번 조치는 호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앞으로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청소년 SNS 셧다운제가 전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일고 있다.

SNS로 유해 콘텐츠 무방비 노출…청소년 셧다운제 추진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셧다운제 법안은 현 남호주 지역 주지사인 피터 말리나우스카스와 그의 부인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가 쓴 '불안세대'라는 책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부모들이 자녀와의 유대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이 정서적인 빈자리를 SNS가 과도하게 채워가면서 현재 청소년 세대가 전례 없는 정신건강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책의 주된 주제는 청소년 SNS를 금지시키고 부모와 더 많이 대화하며 친구들과 직접 마주 보고 놀 수 있는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말리나우스카스 주지사는 지난해 9월부터 SNS 연령제한 도입을 제안하며 입법활동에 주력했다. 이후 일명 사이버 불링, 온라인 괴롭힘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해당 입법에 강하게 동참하면서 호주 사회에서 큰 이슈로 떠올랐다. 호주 정부는 SNS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전체 호주 청소년의 96%가 SNS를 이용 중이었고, 이들 중 70%가 여성혐오, 폭력, 자살 조장 콘텐츠 등 온갖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절반 이상의 청소년들이 사이버 불링을 당했고, 약 14%의 청소년은 디지털 성범죄 위험에 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전면 차단하는 법을 추진하게 됐다. 해당 법에 따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스냅챗, X(옛 트위터), 레딧, 트위치, 킥 등 주요 10개 SNS 플랫폼의 경우 청소년들의 사용이 원천 차단된다. 이 규제를 위반하고 청소년 계정이 발견되면 해당 플랫폼에 4950만호주달러(약 500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청소년들 SNS 셧다운에 반발, 헌법소원 나서…"표현의 자유 막혀"

AP연합뉴스

호주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디지털 자유 프로젝트'라는 시민단체까지 조직돼 15세 소녀 2명이 호주 연방대법원에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의 조치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특히 15~16세 청소년들은 곧 성인이 될 사람들인데 이들의 SNS 표현의 자유까지 가로막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청소년들도 정치적 관심이 높은 경우가 있고, 일부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SNS인데 유해성을 막겠다고 전체 SNS를 다 막아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유튜브도 호주 정부 조치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소통 기능을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며 고등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반발한 상태다. 무조건 SNS가 청소년에게 해롭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순기능은 인정하고, 유해 콘텐츠를 어떻게 차단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16세 미만 규정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어차피 16세면 조금 있으면 성인이 되는 사람들인데 그때까지 가로막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크고 작은 논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호주 대법원에서 헌법소원에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금지법의 향방이 크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이 접속한 것인지 어른이 접속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호주 현지에서도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은 주민등록제도가 있어서 물론 도용 문제가 있다고는 해도 연령별 접속차단을 시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호주는 주민등록제도 같은 것이 없는 나라다. 미국처럼 세금납부번호나 메디케어번호, 운전면허증 등이 신분증으로 많이 쓰인다.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부모 번호로 접속할 위험성이 충분히 있다.

호주 정부는 이런 도용을 막으려고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얼굴, 음성, 위치데이터 분석으로 나이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이것이 완벽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노안인 청소년들은 성인으로 인식돼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접속차단 프로그램을 우회할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도 문제다. 이런 여러 우회 가능한 요소들이 남은 상황에서 호주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전면 셧다운을 실시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호주가 가장 먼저 SNS 셧다운제를 발표했고 이미 유럽 여러 나라들도 발표를 계획 중이다. 덴마크가 15세 미만 셧다운제를 준비 중이고,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도 규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유럽연합(EU)에서도 SNS 최소 사용 연령을 16세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상황이라 곧 각국에서 실제 금지법률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로 확산되는 청소년 SNS 셧다운…국내서도 논란 확산

유럽이나 미국 지역으로 확대되면 결국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SNS 셧다운제가 광범위하게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벌써부터 이 SNS 규제에 해당이 안 된 다른 신생 SNS 플랫폼으로 호주 청소년들이 대거 갈아타고 있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어서 한번 규제가 시작되면 한도 끝도 없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SNS 금지법 관련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원래 인터넷 강국답게 SNS 사용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최근 청소년 123만 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21만 명 이상이 SNS 과몰입 상태라는 응답이 나와서 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다만 실효성이 거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많다.

과거 한국에서는 2011년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심야시간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막아서 수면권을 보장한다면서 대대적인 규제를 실시했었다. 그런데 2022년에 실효성이 없다고 폐지됐다. 주민등록번호 도용이나 VPN 우회 등 온갖 편법이 난무했기 때문에 해봤자 못 막는다는 것이다. 중국도 당국이 구글을 비롯해 민감한 인터넷 검색을 다 막고 있지만 우회 수법을 모두 막진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일일이 다 감시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SNS 과몰입 현상, 이를 통한 성범죄, 사이버 불링과 같은 2차 범죄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향적인 금지법보다는 자율적 규제와 사회적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들이 SNS 대신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 교육환경에 삶이 치이다 보니 솔직히 여유시간에 이것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 전에 근본적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획취재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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