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송년회 많은 시즌입니다. 다들 숙취 없는 12월 보내고 계시는지요. 송년회에서 술 마시다가 '이건 그럼 어느 나라 음식이냐'에 대한 토론으로 번진 메뉴가 있습니다. 바로 '나가사키 짬뽕'인데요. 배는 부른데, 입이 심심하면 무난하게 고르는 메뉴죠. 이 음식은 도대체 어떻게 등장하게 됐을까요? 오늘은 나가사키 짬뽕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라고 알려진 일본 나가사키현 사해루의 짬뽕. 사해루.
우리나라도 인천항 개항에 맞춰 중국 음식 등이 전래됐는데요. 일본도 쇄국정책 당시 유일한 개항장이었던 곳이 나가사키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해외 식문화가 전래하기 시작했다는데요. 이때 중국 사람들도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와 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나가사키 짬뽕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요,
원래 모티브가 된 음식은 중국 푸젠성의 '탕육사면'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돼지고기, 표고버섯, 파 등을 넣은 하얀 국물 요리인데요. 이것을 나가사키에서 나는 돼지고기, 양배추, 오징어 등으로 변형해 재해석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나가사키현 짬뽕의 원조집으로 불리는 중화요리점 '사해루(시카이로)'에서는 다음과 같이 유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899년 나가사키의 중국인 유학생과 화교들을 위해 닭 뼈와 돼지 뼈 육수를 우리고 나가사키에서 나는 야채, 고기 자투리를 볶고 중화면을 넣어 푸짐하게 양을 불려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메뉴에 없는 요리로 중국식 우동이라는 뜻으로 '지나우동(시나우동)'으로 불렀다고 해요. 그리고 짬뽕으로 불리게 된 것은 푸젠성식 인사말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밥 먹었냐(츠판)'라고 묻는 중국 인사가 푸젠성 방언으로 '챠폰' 또는 '샤폰'에 가까운 발음으로 소리 나는데, 이것이 '짬뽕'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튀긴 면을 사용한 접시우동. 링거헛.
그리고 나가사키 짬뽕과 더불어 발전한 음식이 바로 '접시 우동(사라 우동)'입니다. 배달의 편의를 위해 중국식 볶음면처럼 짬뽕을 볶아 국물을 없앤 것인데요. 국물이 없어 평평한 접시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리 과정을 대폭 간편히 하기 위해 면을 한번 튀겨 바삭바삭하게 만들고, 여기에 걸쭉한 소스를 부어 먹는 방식도 나왔는데요. 일반 면, 튀긴 면 둘 다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스터 소스나 식초를 뿌려 먹는 것이 현지의 먹는 방식입니다. 신기한 진화 과정이죠.
사실 일본에는 나가사키 짬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5대 짬뽕이라고 해서 지역마다 다양한 짬뽕 맛집과 특징이 있잖아요? 일본도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짬뽕이 존재합니다.
일본도 3대 짬뽕이 있는데요, 앞서 소개해드린 '나가사키 짬뽕', 그리고 나가사키현 오바마시의 '오바마 짬뽕, 그리고 규슈의 '아마쿠사 짬뽕'입니다. 오바마 짬뽕은 닭 뼈 육수에 멸치 육수를 섞어 쓰고, 위에 날계란을 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요. 아마쿠사 짬뽕은 나가사키 짬뽕보다 굵은 면을 쓰고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단맛이 난다고 해요.
일본 나가사키현 오바마시의 '오바마 짬뽕'(왼쪽)과 규슈지방 '아마쿠사 짬뽕'. 트레블넷.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전국에 있는 짬뽕 체인점이 있답니다. '링거헛(Ringer Hurt)'이라는 이름의 체인인데요. 나가사키 짬뽕과 접시 우동을 주력으로 파는 곳으로 정식이 한 끼에 800엔(7570원) 정도 합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라 꽤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이 링거헛에서 매년 인기를 끄는 메뉴가 '굴 짬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겨울 중화요리점 특선 메뉴랑도 일치하는데요. 심지어 이번에는 점포·계절 한정 메뉴로 '굴 짬뽕 찌개'라는 메뉴도 계절 한정으로 선보인 바 있습니다. 메뉴 설명에도 굴이랑 고추장, 된장을 넣어 찌개로 만들었다고 돼 있었는데요.
일본 나가사키 짬뽕 체인 '링거헛'에서 계절한정, 점포한정 메뉴로 선보이는 '굴짬뽕 찌개'.
이럴 때마다 동아시아 3국의 식문화는 참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 음식이 일본에서 짬뽕이라는 형태로 건너오고, 다시 한국이 빨간 국물, 칼칼한 맛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하니까요. 주말 짬뽕으로 해장하는 일 없이 과음은 삼가시고 슬기로운 송년회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