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마트보다 비싼 편의점 봉지라면…폭풍성장, 왜?

외국인 관광객 몰리며 봉지라면 수요 증가
편의점이 신제품 '테스트베드'로 부상

삼양식품은 지난달 3일 내놓은 라면 신제품 '삼양 1963'을 대형마트 출시 일주일 후 편의점 판매를 시작했다. 통상 봉지라면은 대형마트 선출시 이후 한 달 정도 지나야 편의점에 들어오는 것이 업계 관례다. 이번에 출시 간격을 크게 단축한 것은 초기 판매의 핵심 무대가 대형마트와 편의점 두 곳 모두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700만 개가 팔렸고, 이 중 120만 개(17%)가 편의점에서 판매됐다. 이 제품의 편의점 판매가는 1900원으로 대형마트(1406원)보다 26% 비싸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판매 비중이 빠르게 늘었다는 점은 라면 소비의 무게중심이 '가격'에서 '접근성·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CU 라면 특화 편의점 왕산마리나점.

편의점이 봉지라면 시장의 새로운 전쟁터로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대형마트 선(先)출시-편의점 후(後)입점'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 트렌드 변화와 외국인 관광객 유입 확대 등이 맞물리면서 편의점이 제품 테스트와 판매 확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BGF리테일의 편의점 CU는 올해(1월~12월9일) 봉지라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9% 증가했다. 이 기간 용기라면(컵라면) 매출이 9.6%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봉지라면 매출도 각각 20%, 10% 늘었다.

GS리테일은 GS25의 최근 한 달(11월 10~12월 9일) 봉지라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1% 늘었다. 최근 3년 같은 기간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GS25 관계자는 "신제품 '삼양 1963'의 인기가 봉지라면 매출 증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봉지라면 매출도 각각 20%, 10% 늘었다.

편의점 봉지라면 가격은 대형마트보다 20~30% 비싸다. 농심 '신라면'의 편의점 가격은 1000원으로 대형마트(782원)보다 28% 높다. 오뚜기 '진라면' 역시 편의점 1000원, 대형마트 654원으로 34% 차이가 난다. 가격 격차에도 불구하고 봉지라면 매출이 편의점에서 늘고 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최저가 구매'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외국인 관광객이 불붙인 'K라면 열풍'

편의점 봉지라면 매출 증가의 배경에는 외국인 수요 확대가 있다. CU는 지난해 12월 홍대에 '라면 라이브러리 1호점'을 열어 수백 종의 봉지라면을 한 공간에 전시한 뒤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도입했다. 한국식 라면 문화를 경험하려는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강라면 체험'이 입소문을 타면서 봉지라면 매출이 급증했다. CU 관계자는 "홍대상상점에서 중국인 고객 1명이 100여 종의 라면을 각 1개씩 구매했는데, 영수증 1장에 표시 가능한 품목 개수가 최대 55개라서 영수증이 연달아 2개 출력되는 사례 있을 정도"라며 "외국인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한국 봉지라면 수요가 높다"고 설명했다.

CU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라면 특화점을 지난해 30여 곳에서 올해 80여 곳으로 대폭 확대했다. 해당 점포들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봉지라면과 컵라면 매출 비중은 78대22로 나타났다. 일반 편의점에서 컵라면 매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반대의 구조다. CU 전체 기준으로도 봉지라면 매출 비중은 지난해 21.3%에서 올해 24.6%로 상승했다.

CU 라면 특화점은 제조사엔 신제품 테스트 공간도 되고 있다. 풀무원식품이 서울시와 협업해 만든 '로스팅 서울라면'이 CU에서 먼저 판매된 것이 대표적이다. 제조사들이 신제품 출시 전략에서 편의점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매출 증가세는 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에서도 뚜렷하다. GS25는 올해 1~11월 외국인 간편결제 매출(알리페이·위챗페이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74.7% 증가했다고 밝혔다. 편의점이 한국 문화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세븐일레븐은 봉지라면 외국인 매출은 80% 늘었다. 이마트24도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이 37% 성장했다.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재개된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12일까지 명동 점포 매출이 직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1인 가구 800만, 장보기도 대형마트에서 편의점으로

1인 가구 증가와 대형마트 이용 감소도 편의점의 성장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소량·근거리 소비가 일상화됐고, 장을 보는 장소도 자연스럽게 대형마트에서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는 804만5000가구였다. 2021년 716만6000가구로 700만명대를 넘어선 지 3년 만에 800만명을 넘겼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1%로 역대 가장 높다. 1인 가구 비중은 2019년 30%, 2023년 35%를 각각 기록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소비 구조 변화는 대형마트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대비 0.8%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도 1.1% 감소했다. 반면 편의점은 24시간 운영, 접근성, 소포장 제품 등 생활형 소비 환경을 앞세워 주요 구매처로 올라섰다.

라면 시장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즉시 구매해 간편하게 끓여 먹기 좋은 상품을 찾는 1인 가구, 색다른 한국 체험을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봉지라면과 컵라면 모두 편의점 판매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은 이제 '보충 구매처'를 넘어 1인 가구와 외국인 소비를 모두 끌어안는 생활형 채널로 굳어졌다"며 "라면을 포함한 간편식 시장에서도 편의점 중심의 구조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경제부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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