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1966년 가수 패티김이 주연을 맡은 '살짜기 옵서예'로 첫발을 뗀 한국 뮤지컬이 내년 60주년을 맞는다. 뮤지컬 업계가 60주년 기념사업 준비로 바쁘던 지난 5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최고 권위의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뮤지컬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K컬처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한국뮤지컬협회가 지난 2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개최한 '뮤지컬 포럼 2025'는 뮤지컬 팬들이 몰리면서 700석 규모 대극장이 만석을 이루기도 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을 최근 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 창작 뮤지컬의 향후 발전을 위한 방안을 물었다.
이종규 이사장은 "요즈음 정부와 국회에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서로 도와줄 게 없냐며 법적·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게 가장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뮤지컬 산업 진흥법이 계류 중이다. 이 이사장은 "연말에 법안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이뤄지고 내년 상반기쯤이면 제정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국회에 계류 중인 뮤지컬 진흥법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1996년 시행된 영화진흥법이 한국 영화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듯 뮤지컬 진흥법이 뮤지컬 산업의 성장을 가져다줄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진흥법은 뮤지컬 산업 진흥을 위해 전담 기구를 지정하고 심의·의결·자문하는 기구로서 뮤지컬 산업진흥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이종규 이사장은 "진흥원을 새로 설립하면 좋겠지만 공공기관을 늘리는 게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잘 할 수 있는 기관을 지정하는 방안에 뮤지컬 업계가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전담 기구는 현재 여러 뮤지컬 지원 사업을 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중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여러 기관에서 뮤지컬 산업을 지원하다 보니 중복되는 사업이 발생하고, 지원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측정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종규 이사장은 "분산된 예산 편성, 단기적인 지원, 정책 효과의 측정 어려움 등이 문제로 지적됐는데 전담 기구가 생기면 현재 3개 기관에 나눠진 뮤지컬 지원 정책이 통폐합되면서 지원 계획부터 집행까지 통일성 일관성 연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이종규 이사장은 뮤지컬 전용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창작 뮤지컬은 중소극장용 작품 위주로 개발되고 대극장용 작품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대극장은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로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2016년 300석 규모의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초연한 소극장 뮤지컬이다.
이종규 이사장은 "대극장 뮤지컬은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제작사가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극장 입장에서도 흥행성이 검증된 작품에 대관을 줘야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창작 초연 작품에 대극장을 빌려주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을 키우기 위해 공공성을 갖춘 전용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이 이사장은 강조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국회에 계류 중인 뮤지컬 진흥법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공공 극장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두 극장은 복합공연문화시설이기 때문에 뮤지컬에만 공연장을 내어주기 힘들다.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서울시뮤지컬단을 산하 단체로 두고 있어 다른 단체가 뮤지컬 공연을 하기가 더 어렵다. 새로운 뮤지컬 전용 극장이 필요한 셈이다.
이 이사장은 "진흥법에 구체적으로 창작 뮤지컬을 초연할 수 있는 극장 설립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정부와 지자체가 한국 뮤지컬 산업을 진흥해야 되는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규 이사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명성황후'를 필두로 10여 편의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이 개발돼 성과를 낸 점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동안 '영웅', '프랑켄슈타인', '광화문 연가', '그날들', '웃는 남자', '벤허', '마타하리' 등의 대극장용 창작 뮤지컬이 개발됐고 지난해에도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와 '일 테노레'가 초연됐다. 오는 12월에는 조선 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복 입은 남자'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창작 뮤지컬이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할 예정이다.
이종규 이사장은 창작 뮤지컬 시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대극장 공연을 주도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라이선스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 홍보, 마케팅 스태프 등은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오리지널 투어 팀이 올 때도 있지만 한국에서 공연할 경우 한국 배우와 스태프들이 고용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뮤지컬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다. 뮤지컬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서 고용 창출 효과가 높다."
이 이사장은 "뮤지컬을 산업을 진흥해야 하는 이유가 고용을 창출해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문화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용 창출 외에도 지식재산권(IP)을 통한 수출 효과를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좋은 작품들이 40~50년 동안 계속 공연하면서 수익을 내듯이 우리도 좋은 작품을 개발해 IP를 수출할 수 있다"며 "이미 40개가 넘는 작품이 중국과 일본 등에 수출된 만큼 뮤지컬 활성화는 뮤지컬 업계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