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지만, 영국은 직장인 등 비법학 전공자에게 변호사가 될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다. 국내 직장인 A 씨는 최근 영국 현지에 한 번도 가지 않고 1년 6개월짜리 온라인 대학원 과정을 마쳐, 내년 영국 변호사(solicitor) 시험(SQE)을 앞두고 있다. A 씨는 한국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에 비교하면 부담이 크지 않다며 "핵심 과목만 이수하면 된다. 결코 만만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깊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도 직장인들이 방송통신대학의 과정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픽사베이
영국은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경력자들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문턱을 빠르게 낮췄다. 비전공자들을 위해 'BPP University', 'University of Law' 같은 대학원 과정을 두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야간 과정을 대폭 확대해 직장인들의 접근성을 한층 높였다.
2021년에는 변호사 선발 제도를 대폭 개혁했다. 2000만 원에 달하는 비싼 실무 교육과정(Legal Practice Course·LPC)을 폐지하고, 절대평가 방식의 자격시험(SQE)을 도입했다. 합격률은 50% 수준이고, 절대평가여서 합격 정원이 없다.
2년간의 실무 수습 요건도 완화해 로펌 외에 정부기관, 사내 법무팀 등 최대 네 곳의 경력을 합산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변호사인 김경화 스티븐슨하우드 대표변호사는 "의사가 짧은 교육을 받고 의료전문 변호사가 되거나, 엔지니어가 변호사가 되어 건축 분야 전문가가 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개방적인 제도의 배경에는 변호사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가 있다. 영국에서 유학한 한 로스쿨 교수는 "영국은 변호사 정원을 두는 식으로 국가가 변호사 시장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경화 대표변호사 역시 "영국에서 변호사는 일정 수준만 넘으면 주어지는 자격증 개념"이라며 "일단 변호사가 되면 장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치열한 법률 서비스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는 '자격'을 부여할 뿐, 생존은 '시장 경쟁'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방송통신대(방송대) 로스쿨 도입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는 시장 포화와 변호사시험 합격률 저하에 대한 우려다. 이는 변호사 수를 국가가 적절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영국과는 반대의 철학이다. 인구가 7000만 명인 영국은 매년 2500명 정도 변호사가 배출된다.
한 로스쿨 교수는 "집단이 커지게 되면 균질한 수준을 갖추지 못하게 되고 경쟁에 따라 계층이 나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변호사가 됐다고 해서 일자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전제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박성동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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