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연방기관이 428개나 필요한가. 들어보지도 못한 기관이 많고 영역이 겹치는 기관도 많다. 99개면 충분하다."
미 연방정부의 관료주의를 지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에는 평소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낙점된 '기업인' 머스크 CEO는 생산성 극대화를 외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테슬라, 스페이스X 등 그가 이끄는 기업의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일명 '생산 알고리즘'을 주문한다.
생산 알고리즘의 첫 번째 조항도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불필요한 생산 단계는 과감히 없애고 대량 해고도 불사한다.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그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법무·안전 당국과 같은 부서에서의 요구사항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게 머스크 CEO'라고 소개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머스크 CEO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앉힌 데에는 그가 그동안 기업인으로 보여온 면모가 트럼프 당선인의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 스페이스X, 엑스(X·옛 트위터), 뉴럴링크, 보어링컴퍼니 등 다수의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다. 불필요한 공정을 싹 다 없애고 안전 문제가 생기더라도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머스크 CEO의 전기에는 그가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화가 소개된다.
2018년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테슬라 공장의 조립라인을 돌아보던 그는 안전 센서가 작동하면서 생산라인이 종종 가동을 멈추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꼭 필요한 센서가 아니라면 모두 제거하라며 "중요하지 않은 센서를 설치하는 사람은 퇴사 권고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로 인해 생산라인 중단은 대폭 줄었지만 생산 품질 담당 수석 책임자는 퇴사했고 산업재해율은 업계 다른 기업보다 30%나 높다는 결과를 받아들게 됐다. 사소한 공정 하나도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누가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왜 필요한지 물어본 뒤 거침없이 없애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는 사업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 머스크 CEO는 스페이스X에서 로켓 엔진 생산 비용이 과도하게 높은 이유를 찾다가 "군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요구하는 수백 가지 사양과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받았다. 머스크 CEO는 누가 그러한 요구사항을 만들었냐고 되물었고, 직원들은 '군대' 또는 '법무 당국'이라고 답하는 것으로는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요구사항에 항상 의문을 품고 비용, 공정을 최소화하면서 정해진 규칙을 넘어서라고 그는 주문했다. 소송도 불사했다.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조직 운영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했다. 2022년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를 인수하면서 머스크 CEO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정리해고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두 달 만에 7500명이었던 직원을 세 차례에 걸쳐 정리해고해 2000명 수준으로 줄였다. 하루 만에 회사 직원들은 사내망에 접근조차 막히고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머스크 CEO의 이러한 행동을 두고 당시 해고자 명단을 작성했던 한 측근은 아이작슨 작가에게 "머스크 CEO는 진정 탁월한 만능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이 일반 그룹보다 100배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 CEO의 이러한 효율성 극대화 움직임을 두고 최근 '우선 후려치고, 나중에 고치고(Slash First, Fix Later)'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비용을 부분적으로 줄이는 것보다 필요 이상으로 대폭 삭감한 뒤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비효율 덩어리'로 평가받는 연방정부를 축소하는 머스크 CEO의 결정은 거침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방정부는 2024회계연도에 6조7500억달러(약 9500조원)를 지출했고 적자가 발생했다. 400개가 넘는 연방기관을 99개 수준으로 줄이고, 연방정부 직원을 절반 이상 해고해도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인수팀 공동위원장인 하워드 러트닉이 "6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 중 얼마를 절감할 수 있나"라고 한 질문에 머스크 CEO가 "최소한 2조달러"라고 답한 만큼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의 칼날은 날카롭다 못해 매섭고 서슬 퍼럴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머스크 CEO의 첫 번째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기간 내내 '연방 교육부 폐지'를 주장한 데다 머스크 CEO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함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지명된 비벡 라마스와미도 연방정부 개혁안에서 교육부를 폐지하고, 대신 인력 교육 프로그램을 노동부로 이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미국 연방 정부에서 일하는 일반직 공무원은 올해 3월 기준으로 전체의 70%가량이 미군이나 안보 관련 기관에 속해 있고, 교육부(4425명)는 일반직이 가장 적은 부처이나 연봉 중간값이 11만8410달러로 부처 중 가장 높다.
연방수사국(FBI)을 없애 1만5000명의 특수 요원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거나 국세청(IRS)과 원자력규제위원회도 다른 부서로 업무 이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정부효율부가 기존 연방정부의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와 낭비성 지출을 줄이며, 연방 기관들을 구조조정을 할 길을 닦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민간 부문의 노하우를 정부에 투입하기 위해 미국혁신국을 운영했다. 당시에도 여러 IT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백악관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조언했다.
머스크 CEO가 기업인으로 그동안 보여온 행보를 감안할 때 1기보다 다소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공격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 후기인 2020년 말 공무원 고용과 해고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행정명령 '스케줄 F'를 내린 바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 명령은 사라졌다. 연방정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복구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러한 머스크 CEO의 스타일을 아는 연방정부 직원들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정부효율부 운영과 관련한 현시점에서 지켜볼 부분은 그의 실질적인 권한 존재 여부와 크기다. 당초 구상과 달리 위원회가 아닌 부처 형태로 이름은 지어졌으나 새 부서를 설립하는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한 공식적인 연방 부처가 될 수는 없으며 자문기구 역할만 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또 연방정부 직원의 경우 이해 상충 문제를 피하고자 재산 공개와 일부 기업 지분 처분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머스크 CEO와 라마스와미 모두 연방정부의 직원으로 채용된 것이 아니어서 권한을 갖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머스크 CEO의 연방 관료제 실험 앞에 ▲정부의 어떤 부문을 표적으로 삼을지 ▲미 정계에서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등 두 가지 미지수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머스크가 주도한 효율성이 필수적인 정부 서비스를 방해한다면 인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